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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6월 필자는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월간 중앙> 7월호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북한 로동당 창건일 기념행사 때 남쪽 참관단장이었던 한완상 부총리가 김일성 시신 참배를 요구했다’는 잘못된 주장 때문에 또 다시 ‘색깔론 시비’에 휘말려야 했다. 사진은 98년 5월 안기부의 부훈 ‘정보가 국력이다’ 제막식 장면으로, 왼쪽부터 이종찬 당시 안기부장, 김대중 대통령,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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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00
2001년 6월18일 아침 교육부 장관 집무실에 도착하니 비서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월간중앙> 7월호에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나를 비난한 내용이 실렸는데, 지난해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55돌 기념행사 때 남쪽 참관단 단장이었던 내가 북한 사람들에게 김일성 묘역에 가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의 인터뷰 기사를 찾아봤다. “한완상씨가 북한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 한씨가 평양 고려호텔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나서 김일성 묘역에 가보고 싶다. 이렇게 부탁했어요. 여기서는 안 가겠다고 그래 놓고 말이지. … 오히려 북한 사람들이 말렸어요. 자기들 입장이 난처하니까.” 이어 기자가 김일성 묘역에 가는 것이 문제가 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거 왜 시신 앞에서 참배하겠다는 뜻이지. 대한민국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굴어서 탈이야. 대북문제는 특히 그래요. 딱 버티는 사람이 있어야지. 그런 사람이 부총리나 되고….” 나는 기사를 읽고 아연실색했다.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지만 수구세력 쪽에서는 이를 매카시즘적 색깔론으로 악용할 것임을 나는 직감했다. 단호하게 대처하기로 결심한 나는 비서실을 통해 즉각 기자회견을 준비시켰다. 동시에 이씨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네덜란드에 가고 없었다. 대신 전화를 받은 부인에게 나는 빨리 남편에게 연락해서 거짓을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했다. 법적 대응을 할 뜻도 비쳤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평양에 함께 갔던 김종수 신부와 조성우 민화협 집행위원장 등에게 기자회견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했다. 기자들 앞에서 나는 먼저 당시 상황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평양에서 우리 참관단은 고려호텔이 아니라 봉화초대소에 묵었다. 이씨는 기초적 사실부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10월10일 일행 중 몇 분이 찾아와 금수산 인민궁전을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점잖게, 그러나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첫째 북한 당국이 처음부터 참배가 아닌 참관을 강조했다. 둘째로 남북간에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해내려면 남이나 북이나 예민한 일에는 보다 합리적이고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셋째, 만일 참관단 중 일부라도 참배를 하게 되면 남남갈등을 조장하게 될 것을 우려했다. 넷째, 북한 당국이 내게 여러 번 여러 사람들의 입을 통해 참관만 하라고 상기시켜주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나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도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그래서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고집스럽게 불변하는 것은 남한의 매카시스트들이다.’ 나는 사실 이씨가 꽉 막힌 수구반공주의자는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의 집안 내력(항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의 손자)을 보아도 그렇다. 기사를 보면, 내가 평양에 가기 전에는 김일성 묘역에 안 가겠다고 했다는데, 서울의 누구와도 그런 얘기 자체를 나눈 적이 없다. 거짓말이자 웃기는 소설(笑說)이다. 어떻게 이런 분이 국정원장을 지냈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는 정보와 첩보의 기본적 차이도 모른단 말인가! 그는 또 마지막에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을 했다. “그런 사람이 부총리가 되고….” 그의 모든 거짓 증언들 뒤에는 내가 부총리가 된 것을 아주 못마땅해하는 불편한 심기가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마지못해 <월간중앙>을 통해 내놓은 해명자료는 또 한번 나를 실망시켰다. 그는 A4 용지에 4가지로 인터뷰의 진의를 요약했는데, 청와대에서 문제삼지도 않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내용만 부연설명하고 정작 내가 요청한 정정보도와 관련해서는 말미에 살짝 붙여놓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한편 이종찬 전 고문은 같은 인터뷰에서 한완상 교육부총리가 작년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묘소에 참배하고 싶다고 말하였다고 발언하였으나, 이는 사실 오인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하고 사전에 <월간중앙>에 이에 대한 정정을 요청하였고 <월간중앙>도 이를 반영키로 하였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오해에 기초한 발언에 대하여 한완상 부총리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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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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