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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2.19 21:46 수정 : 2012.12.20 00:27

2004년 4월21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우리당 지도부를 초청해 한나라·자민련·새천년민주당 등 야3당이 가결한 탄핵소추안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필자는 ‘탄핵정국’을 지켜보면서 민주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집단 광기를 실감했다.

한완상 비망록-햇볕 따라 평화 따라 157

2004년 3월12일 정치적 비극의 날이 왔다. 한나라당,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 소속 모두 195명의 의원이 탄핵소추안에 대한 제안설명도 유인물로 대체한 채 무기명으로 탄핵 투표에 참가했다. 결과는 193명 찬성에 2명만이 반대했다. 압도적으로 탄핵이 가결되고 오후 3시 소추결의안 정본이 헌법재판소로 송달되었다. 표결 순간 박근혜 의원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신나게 의사봉을 두들겼다. 한국 정치 사상 가장 부끄럽고 가장 비열한 순간이었다. 이런 무리한 발의와 처리 과정을 생방송으로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격앙 그 자체였다. 강력한 정치 역풍이 불 조짐이 일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소추안 가결 선봉에 나선 ‘탄핵 5인방’을 크게 부각시켰다. 더불어 탄핵소추안 가결에 협조한 193명을 ‘갑신공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박관용 국회의장,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홍사덕 총무,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와 유용태 원내총무가 바로 5인방이다.

외신들도 이번 탄핵사태를 일종의 미친 짓으로 보고 있다. 3월15일치 <파이낸셜 타임스>에서는 이렇게 혹평했다. “지난 12일 한국 의회는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혔다. … 산업화된 경제 덕분에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인상을 주지만, 이번 사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아직 민주화가 멀었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나는 이번 탄핵정국 상황이 ‘친노 대 반노’의 대결 상황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 대 반민주, 부패 대 반부패의 대립이요 갈등이다. 왜 그런가? 지난 대선 때 대구·경북지역에서 이회창 후보 지지율은 무려 76%에 이르렀다. 그런데 같은 지역에서 이번 탄핵을 반대한 국민도 73%에 이르기 때문이다. 부산·경남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65%나 지지했는데 탄핵 반대는 무려 70%에 이르렀다. 그러니 보수적인 시민들조차 ‘193명의 행동’을 찬성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보수는 곧 반노라고 규정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반민주적 정치인들만이 반노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윤민석의 노래 ‘너희는 아니야’가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또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제발 너희는 나라 걱정 하지마/ 너희들, 나라를 걱정할 자격 없어/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4월15일 한국 정치사에서 잊을 수 없는 변화가 또 한번 일어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국회의원 299명의 반수를 넘는 152명을 당선시켰다. 기존 47명에서 3배 넘게 늘어난 것이다. 자민련은 4명을 당선시켰으나 김종필 총재가 낙선함으로써 제5당으로 밀려났고, 조순형 대표최고위원의 새천년민주당은 제4당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결정하게 되면서 지역구 단 2석만 얻은 민주노동당이 정당득표율13%를 획득함으로써 10석을 확보해 제3당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새천년민주당은 노 대통령 탄핵에 앞서는 바람에 처참한 몰락을 겪게 되었다. 그나마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의 ‘대국민 사죄 이벤트’의 효과 등으로 121석이라도 차지할 수 있었다. 하나 아쉬운 것은 박 대표가 과거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할 때 부친의 유신 과오에 대해 진솔한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완상 전 부총리
이번 총선의 또 하나의 이변은 제이피(김종필)의 정계 은퇴다. 나는 평소 제이피가 애칭처럼 정의(저스티스)와 평화(피스)를 이루는 경륜 있는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랐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이 3선개헌을 시도할 때 예춘호·양순직·박종태 의원 같은 지조있는 동지들과 손잡고 정의와 평화의 정치세력을 키워가기를 바랐다. 그때 그들과 함께 끝까지 3선개헌 반대하면서 그의 경륜과 정치 역량을 키워갔다면 박 대통령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자신도 오늘처럼 허무한 패배를 겪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열린우리당이 승리에 도취해 보수적인 주류세력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는 일말의 불안감을 갖게 된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국민과 역사 앞에서 더욱 겸손하게 옷깃을 여미며 흔히 집권당이 빠져드는 정치적 폐습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을 기각한다면 노 대통령은 반드시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권위만은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 앞으로 그의 자유분방한 화법들이 소중한 권위마저 훼손하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한완상 전 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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