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 간사로서 오재식은 ‘국제 학생 개척자’(프런티어 인턴) 프로그램 같은 교육훈련 사업에 주력했다.
사진은 1기 프런티어 인턴인 미국의 매케이, 일본의 가와시마, 한국의 김숙자씨가 65년 미국보스턴박물관을 방문한 모습.
<강문규 회고록-나의 에큐메니컬운동 반세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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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32
1960년 7월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협의회) 간사를 맡은 이래 오재식은 각 대학 기독학생회를, 대학은 물론 사회 전반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실천하고 증거하는 전위대로 키우기 위한 다양한 훈련과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국제 학생 개척자’(프런티어 스터디 앤 서비스·FSS) 프로그램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국제적으로 대학생들을 뽑아 함께 토론하고 교육시키는 합숙 훈련 과정이었다. 재식을 비롯한 실무진과 학생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상 ‘프런티어 인턴’이라 불렀다. 당시 진보적인 기독진영에서는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에서 발간하는 계간잡지 <스튜던트 월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잡지는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연합 운동)의 주요한 의제와 안건을 다루고 있었고 기독 지성인의 소명에 대해 학문적으로 토론하는 장을 만들어주었다. 재식도 물론 애독자였다. 한번은 이 잡지에서 ‘프레젠스’(presence·프레즌스)라는 주제로 특집을 다뤘는데, 이 낱말은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때 안병무 박사가 주도하는 신학자 그룹에서 토론 끝에 ‘현존’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정확히 누가 제안했는지는 모르지만 훗날 안 박사는 <현존>이란 잡지를 내기도 했다. 재식은 그 ‘현존’이란 표현이 충격적일 만큼 굉장히 와닿았다. 여러 신학자들이 ‘현존이란 이런 것이다’라며 여러가지 설명을 하기도 했지만, 사실 실체적 개념을 잡기는 어려웠다. 이후 ‘현존’은 기독학생운동의 방향과 내용을 정하는 데 지침이 되었다. 그 무렵 재식을 비롯한 지도자 그룹에서는 학문적 이론에서 출발한 학생운동이 일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이 사람’, 그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 그 공간은 지속적으로 변하는데 어떻게 그 사람의 자리를 한정시킬 수 있는가 등등을 둘러싸고 밤을 지새우며 토론을 벌이곤 했다. 그런데 그토록 고민했던 ‘현존’은 70년대에 이르면 ‘현장’으로 바뀐다. 지금도 흔히 쓰이는 말이자 재식이 평생 떠나지 않은 ‘현장’의 신학적 개념은 60년대에 잡힌 셈이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모인 프런티어 인턴 지원 학생들을 교육할 때 많이 쓰였다. 협의회에서는 프런티어 인턴 위원회를 꾸려 운영했다. 위원장은 강원용 목사였고, 서기는 오재식, 위원은 강문규·김형태·박상증·한배호·현영학·손명걸, 그리고 제임스 레이니 선교사 등이었다. 프런티어 인턴 프로그램은 매기 6개월 과정에 3~4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강문규의 부인인 김숙자, 일본인 청년 가와시마, 미국인 매케이 등이 초기 인턴 참여자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매케이는 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위해 미국에서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프런티어 인턴 교육센터는 처음 원서동에 두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다, 당시 정동 젠센센터에 있던 협의회 사무실과 거리가 먼데다 재정 사정 등의 이유로 곧 통합했다. 인턴들의 숙소는 되도록 젠센기념관 부근의 하숙집을 이용했다. 1958년 정동제일교회 옆에 새로 건축된 젠센센터는 미국 감리회 선교사로 56년 작고한 앤더스 크리스 젠센을 기리고자 그 부인이 세운 기념관이었다. 60년 12월 정동제일교회에 교육관으로 헌증되어 여러 기독운동단체들이 사무실로 쓰게 되었다. 이는 감리교 선교사였던 협의회의 연구간사 레이니 덕분에 감리교 선교부에서 배려해준 덕분이었다. 새 건물이고 공간도 넓어서 갖가지 실무적인 모임을 주선해야 했던 재식으로서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재식과 레이니는 기대 이상으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들은 매주 한번 각 대학의 기독학생회를 찾아가 성경 공부를 지도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구체적인 사건을 주제로 시국 이야기를 한 적도 많았다. 5·16 군사쿠데타, 굴욕적인 한일회담, 도시산업화로 인한 빈부격차 등 내용도 다양했다. 평생 인연을 맺게 된 안재웅 목사(현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도 이때 만났다. 숭실대 기독학생회를 찾아온 재식과 레이니를
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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