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레이니(왼쪽) 전 주한 미대사는 세계학생기독교연맹 선교사로 한국에 와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 연구간사를 맡아 1960년부터 4년 남짓 오재식과 함께 일했다. 사진은 당시 기독의대생 연합동아리 생명경외클럽(VVC)의 고문을 맡은 레이니가 부인 버타(한복 차림)와 함께 클럽의 모임에 참석한 모습. 사진 생명경외클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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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식-현장을 사랑한 조직가 33
1960년대 초반 오재식은 한국학생기독교운동협의회(KSCC·협의회) 간사로서 회원 단체인 기독학생회(KSCM)·와이엠시에이(YMCA)·와이더블유시에이(YWCA)에서 각각 뽑은 학생들에게 리더십 훈련을 시키는 일에 주력했다. 세 단체에서 다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세계학생기독교연맹(WSCF)에서 개발한 ‘교회의 생명과 사명’(LMC)이나 ‘국제 학생 개척자’(프런티어 스터디 앤 서비스·FSS) 프로그램도 한국적 상황에 맞게 시행하고자 재식은 제임스 레이니 선교사와 지혜를 모았다. 그런 점에서 레이니는 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일대 신학과 출신으로 세계연맹에서 인정한 학생사업 전문가답게 기독교 학생들의 교육을 위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내주었다. 또 협의회와 세계연맹의 원활한 연대에도 큰 몫을 했다. 당시 협의회 소속은 아니었지만 밀접한 연대를 한 기독학생 단체가 또 하나 있었다. 의대생들의 모임인 브이브이클럽(VVC·생명경외클럽)이었다. ‘브이브이’는 라틴어로 ‘베네라치오’(중심)와 ‘비테’(생명)의 약자로, ‘아프리카의 성자’로 추앙받는 슈바이처가 한 말이다. 의사이자 신학자인 그는 “생명이 중심이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명경외사상을 펼쳤다. 브이브이클럽은 이러한 슈바이처의 정신을 본받자는 뜻에서 결성한 봉사단체였다. 1958년 6월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당시 대학원생인 전성균(전 미국 미네소타대학 의대 교수)의 발기로 창립했는데, ‘생명경외사상을 본받고 의사의 윤리를 실천하며 의료분야에서 연구하는 젊은이들 간의 이해와 친목을 도모한다’를 목적으로 삼았다. 앞서 57년 다락원에서 와이엠시에이-와이더블유시에이 공동주관으로 열린 하령회(서머 콘퍼런스)에 참가했던 의과·치과대생 몇몇이 처음 논의를 시작했고, 이듬해 하령회에서 전성균을 비롯해 백승호·박응화·박양근·김형묵·김승조·김진희·윤명중·박필생·최규완 등 모두 12명이 발기회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와이엠시에이연맹 학생 대표도 맡고 있던 전성균이 초대 회장으로 뽑혔다. 이 클럽 회원에서는 해마다 1월 초순 슈바이처 탄생 기념행사를 통해 그 정신을 되새겼고, 방학 때면 무의촌 의료봉사활동을 열심히 펼쳤다. 졸업한 의사 회원들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의 의료봉사는 89년 외국여행이 자유화된 뒤 아프리카 등 국외로도 이어졌다. 브이브이클럽의 주축 회원들이 협의회 소속인 와이엠시에이 출신이었던 까닭에 재식은 그들의 활동에 직·간접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또 레이니는 협의회 연구간사를 맡기 전인 60년 7월 이 클럽의 고문으로 위촉돼 동아리 회합 장소를 제공하는 등 지원을 해주었다. 그 무렵 재식은 연세대 의대의 기독학생들과도 친밀하게 교류했다. 훗날 아주대병원 재활의학과에서 재직한 이일영과 재미 심장내과 전문의인 이원규,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에서 은퇴한 김성순 등이 대표적이다.
고 오재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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