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6.25 19:23 수정 : 2013.06.26 09:00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이영숙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부장의 석방을 요구하며 사흘째 농성시위를 하던 여성 조합원들은 경찰의 강제해산에 맞서 스스로 옷을 벗고 ‘알몸 시위’까지 벌였지만 72명이 연행당하고 수십명은 다쳤다. 사진은 당시 초유의 사태를 보도한 한 텔레비전의 뉴스 화면을 찍은 장면.

이총각-우리들의 대장, 총각 언니 29

1976년 7월25일 동일방직 민주노조 여성 조합원들의 농성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었다. 24일 밤 10시까지 이영숙 지부장과 이총각 총무를 석방하라는 농성 조합원들의 요구는 묵살되었다. 회사 주변의 교통은 통제되었고 7월의 태양은 뜨겁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오후로 갈수록 무더위와 허기에 지친 조합원들이 한두명 쓰러지며 병원에 업혀 가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때 “부웅~” 소리와 함께 경찰차가 들이닥쳤다. 누군가 “경찰이 왔다!”고 소리치자 흩어져 있던 조합원들이 재빨리 한곳으로 뭉쳤다. 오후 6시 반, 기동경찰들이 연행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방망이를 들고는 농성장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어린 조합원들은 모두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전쟁 같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도무지 꿈만 같았다. 포위망이 좁혀 올수록 더욱 단단히 팔짱을 끼며 이를 악물었으나 무섭고 덜덜 떨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옷을 벗은 여자 몸에는 경찰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남자들은 손을 못 댄대!”

공포에 떨고 있던 조합원들은 앞다퉈 작업복을 벗었고, 간부들을 보호하려고 자기 옷보다 먼저 간부들의 옷을 벗겨주기도 했다. 그리고 벗은 옷을 치켜들고 목청껏 부른 ‘노총가’는 차라리 울부짖음에 가까웠다. 어떤 사람은 브래지어 끈이 끊어지고 팬티 끈이 떨어져 알몸이 되다시피 했지만, 엄청난 공권력의 폭력 앞에 수치심도 두려움도 떨쳐버린 최후의 저항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경찰의 포위망도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들로서도 처음 겪는 처절하고 단호한 저항이었을 것이다. 무엇이 이 여자들로 하여금 이토록 큰 용기를 내게 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부끄러운 것은 벗은 사람이 아니라 차마 눈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있는 경찰들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 지휘관과 회사 간부가 쑥덕거리더니 메가폰을 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주동자를 내놓으면 무사히 귀가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분노의 눈물을 흘리며 똘똘 뭉쳐 있던 조합원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주동자가 따로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동자입니다.”

이때 회사 간부들이 대의원들을 지목하자 경찰이 몰려들어 그들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경찰들이 방망이로 내리치며 머리채를 잡아채 끌고 가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했고 연행버스가 못 가도록 바퀴 밑으로 들어갔던 안순옥은 몽둥이로 얻어맞으며 끌려나와 버스 안에 내팽개쳐질 수밖에 없었다. 끌려가는 노조 간부들의 뒤를 따라가 죽어도 같이 죽겠다며 스스로 차에 올라타는 조합원들도 있었다.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로 노조 활동을 지켜내고자 옷까지 벗어던진 여성 노동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렇게 72명이 연행되었고 농성은 강제해산되었다. 지옥 같은 아비규환이 수습되고 어둠이 내려앉은 노조 사무실 앞 잔디 위에는 온몸으로 저항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찢어진 작업복과 주인 모를 운동화, 작업모, 머리핀 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튿날 300여명의 조합원들은 섬유노조본부(섬유본조)로 몰려가 연행된 지부장과 총무부장 그리고 72명의 노조원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우려한 경찰은 방순조 섬유노조 위원장의 책임 아래 모두 풀어주었다.

7월27일 오후 이 지부장과 같이 풀려난 총각은 지도부가 없는데도 꺾이지 않는 투쟁으로 결국은 자신들을 석방시킨 조합원들의 용기에 감격했다. 그리고 바로 노조 사무실로 돌아와 잔디 위에 수북이 쌓인 작업복과 운동화들을 보는 순간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이총각 전 동일방직 노조위원장
조합원 정명자는 ‘그날’이라는 시에 목숨을 건 사흘간의 ‘알몸 시위’ 투쟁을 피눈물로 써내려갔다.

‘언제부터인지/ 내 맘 속에 작은 빛이 새싹처럼 싹트고 있었습니다. (중략) / 그날은 사랑으로 결집된 우리 모두의 날이었습니다/ 생명의 날이었습니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모르고 노예처럼 사느니보다는/ 알면서 고민하는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자고/ 나를 각성시킨 그날입니다.’(76년 7월25일 나체시위 그 후)

이총각 구술

구술정리 박민나<가시철망 위의 넝쿨장미> 작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길을 찾아서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