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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미국의 두 가지 ‘원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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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대륙 원주민 인디언 ‘평화 영위’
18세기 루소 ‘고귀한 야만’ 이상화도
콜럼버스 ‘북미 신대륙 발견’ 주장은
원주민 무시한 유럽 중심 편견일 뿐
‘인디언 터전 무자비하게 파괴·강탈’
‘무기’ 필수 상품화…군사주의 ‘원죄’
1791년 제정한 연방헌법 ‘수정 2조’
‘개인 총기’ 합법… 미국총기협회 막강
미국인 사상 뿌리 ‘퓨리터니즘’ 영향
존 윈스럽 ‘언덕 위의 도시’ 선민사상
“적은 무조건 악…백인우월주의 파생”
‘선한 동기가 초래하는 지옥’ 되풀이
‘안보’ 아닌 ‘평화’ 패러다임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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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미국의 두 가지 ‘원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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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교수는 ‘미국의 전쟁병’ 근본 요인으로 건국의 배경 사상인 기독교의 청교도주의와 그 시초인 십자군 전쟁을 지목한다. 그림은 1189년 리차드 1세가 십자군 원정을 위해 영국을 떠나는 장면을 묘사한 글린 워렌 필폿의 작품이다. 사진 영국의회 아트컬렉션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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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들의 인디언에 대한 상투적인 시각 가운데 하나인 ‘잔인한 가해자’로 묘사된 그림. 1848년 어린이 지리 교과서에 실린 삽화. 사진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마이클 헌트 지음·권용립 이현휘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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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전쟁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노예제도와 함께 미국의 인디언 정복을 탐구해야 한다. 내가 볼 때 노예제도와 인디언 정복은 미국의 원죄를 구성하는 두 개의 축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에서 원죄는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의미한다. 노예제도와 인디언 정복 역시 미국의 정신사에서 씻기 어려운 죄악으로 존재한다.
인디언이 북미 대륙으로 이주한 시기는 13~14세기로 추정된다. 아시아와 중남미 대륙 등지에서 이주한 인디언은 15세기 무렵 약 200만~700만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인디언은 북미 대륙의 광야에 흩어져 평화롭게 살았다. 각 부족마다 고유의 문화와 언어가 있었고, 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교육열도 높았다. 장 자크 루소(1712~1778)와 같은 유럽 지식인은 북미 대륙에서 인디언이 영위하는 삶의 양식을 법 없이 평화롭게 사는 ‘고귀한 야만’(noble savage)으로 이상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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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식 교수는 조지아대학에서 가까운 애틀란타 북부지역 인디언 보호구역을 방문했을 때 체로키족의 생김새는 물론 생활풍습이 한국인과 너무나 비슷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사진은 1865년 북미 원주민 부족장들.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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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틀란타 북부지역 체로키족이 거주하는 인디언 보호구역을 여러차례 방문해서 그들의 생활 풍습을 주의 깊게 관찰한 적이 있다. 그때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그들의 얼굴 생김새가 한국인과 너무 유사하다는 사실을 한눈에 발견한 것이다. 나는 만주에서 태어나 성장했기 때문에 중국인의 얼굴 특징을 잘 안다. 또 일본도 자주 방문했기 때문에 일본인의 얼굴 특징도 잘 안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한국인과 달리 얼굴에 광대뼈가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체로키족의 얼굴은 한국인처럼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의 그런 모습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것뿐만 아니다. 그들은 밥을 하기 이전에 쌀에서 겨를 골라내기 위해 키질을 하고 있었다. 또한 맷돌로 콩을 갈기도 했고, 떡메를 쳐서 떡을 빚기도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체로키족의 조상과 한민족의 조상 사이에 어떤 친화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시민사회가 체로키족과 협력해서 어떤 공동의 이익을 꾸준히 창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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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인의 식민지 지배 이전 북미 대륙의 문명화된 5대 부족이자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지녔던 체로키 인디언들이 1830년대 미시시피강 동남부 조지아주의 골드 러시를 찾아 몰려온 백인들에 쫓겨 중서부 오클라호마의 보호구역으로 강제이주당한 고난사를 그린 맥스 디. 스탠들의 ‘눈물의 여로’ 연작. 사진 maxdstandley.com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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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북미 대륙에 상륙하면서 인디언의 평화로운 삶에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식에서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는 신념에 따라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해서 마침내 북미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하지만 북미 대륙에는 수세기 전부터 인디언이 살고 있었는데 어찌 그런 상식이 통용될 수 있단 말인가? ‘북미 신대륙 발견’이라는 상식은 인디언을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는 유럽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 노골적으로 투영된 편견일 뿐이었다. 콜럼버스의 항로는 유럽의 여러 국가에 식민지 개척의 길을 열어주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은 16~20세기 동안 콜럼버스의 항로를 따라 북미와 중남미 대륙으로 건너갔다. 식민지 개척은 한마디로 무력을 동원해서 인디언의 삶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폭력적 과정이었다. 인디언 역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무기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으로 올라섰다.
미국의 선조 역시 인디언의 삶의 터전을 무력으로 강탈했다. 미국의 군사주의라는 원죄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인디언 문명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인디언은 약 320개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보호구역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인디언의 멸종을 촉진하는 제도적 장치라고도 할 수 있다. 1960년에 발표된 인구 센서스를 보면, 보호구역에 거주하는 인디언은 약 1000만명에 이른다. 미국 인구의 약 2.4%에 해당한다. 하지만 현재는 약 500만명이 거주할 뿐이다. 이처럼 격감한 까닭은 인디언 젊은이들이 보호구역 밖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추세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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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에만 도박사업을 허용해주는 흑백 분리정책을 쓰고 있다. 사진은 애틀란타 북쪽 체로키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카지노 리조트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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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는 인디언 보호구역 안에서 노름(카지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었다. 하지만 백인 사회에서는 노름을 금지하고 있다. 노름이 백인 사회의 풍기를 문란하게 하는 폐풍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인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들러 심심풀이로 노름을 하곤 한다. 백인이 뿌리고 간 돈은 인디언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다. 또한 인디언은 나바호 기술대학을 설립해서 운영할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지만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 많은 인디언 학생이 졸업 뒤 취업이 쉬운 미국의 대학교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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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제정된 연방헌법 수정 2조 ‘개인 총기 보유권’은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파생시켰다. 총기 보유권 지지자들의 집회에서 ‘수정 2조’를 새겨 놓은 성조기를 내걸고 있다. 사진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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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국의 군사주의를 고찰하면서 특별히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는 개인의 총기 휴대를 헌법으로 보장했다는 사실이다. 1791년 제정한 연방헌법 ‘수정조항 2조’에서 개인의 총기 휴대를 권리로서 보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방헌법 제정 때 국가의 치안능력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했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수정조항 2조를 신설한 까닭을 이해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바뀌지 않는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총기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나라다.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개인의 총기 휴대를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수정조항 2조를 폐기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처럼 건재한 수정조항 2조는 미국의 무기시장을 안정적으로 부양하는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다. 현재 미국총기협회(NRA)는 미국 최대의 이익단체로 군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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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미국 최대 이익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와 입법로비그룹이 주최한 ‘2019 리더쉽 포럼’에서 라피에르(오른쪽) CEO가 트럼프(왼쪽)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전미총기협회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진영의 강력한 후원단체였다. 사진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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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전미총기협회의(NRA)의 기자회견 직전 ‘개인 총기 보유’ 반대단체인 코드핑크가 ‘전미총기협회가 우리의 아이들을 죽이고 있다’는 펼침막을 깜짝 노출시키는 방법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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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도대체 어찌하여 미국은 군사주의를 혁파하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시선을 미국의 기독교로 돌릴 필요가 있다. 바로 그 기독교가 미국의 군사주의와 인종주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미국은 지구상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일찍이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보다 기독교가 인간의 영혼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곳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하버드대학의 페리 밀러는 “퓨리터니즘(청교도주의)과 그것의 원천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갖추지 않으면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미국이 신봉하는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신조 중 하나는 ‘언덕 위의 도시’(City upon a Hill)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선민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 퓨리터니즘을 신봉하는 변호사였던 존 윈스럽(1588~1649)은 1630년 3월21일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로 향하는 아르벨라호 선상에서 “기독교적 자비의 한 모범”(A Model of Christian Charity)이란 제목의 설교를 했다. 윈스럽은 그 설교에서 식민지에 도착하면 신의 뜻을 받들어 전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자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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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기독교 선민사상은 서유럽에서 건너온 초기 이민자들의 청교도주의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림은 1630년 영국 변호사 존 윈스럽이 청교도들을 이끌고 매사추세츠만 플리마우스 록에 상륙한 장면이다. 사진 reformation.org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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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덕 위의 도시를 매개로 신의 뜻을 세상에 전파하려는 선한 동기는 실제 현실에서 지옥의 문을 여는 사례가 많았다. 이른바 ‘선한 동기가 초래하는 지옥’(the hell of good intentions)이 미국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행한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덕 위의 도시로부터 파생된 미국의 지배적 행동양식을 검토해야 한다. 언덕 위의 도시는 오직 백인만이 신의 뜻을 이행할 수 있다는 백인 우월주의를 파생시켰고, 미국적 가치를 선으로 간주하고 비미국적 가치를 악으로 간주하는 흑백논리를 파생시켰으며, 미국적 가치를 세상에 전파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지상의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파생시켰다. 또한 그런 소명의식에 따라 지상에서 악을 많이 제거하면 할수록 ‘신의 뜻에 부응하는 업적’(good works)을 성취한 것으로 믿었다. 아울러 업적 그 자체는 신의 구원을 보증할 수 있는 간접적 증표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신의 구원을 갈구하는 미국은 무자비한 무력을 동원해서 지상의 악을 제거하는 ‘십자군 전쟁’을 끝없이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거대하게 성장하고, 그러한 군산복합체를 중심으로 딥스테이트가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궁극적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내가 미국에 유학을 온 까닭 중 하나는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기 때문에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원수를 사랑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깨달았다. 미국은 자국에 도전하는 세력을 원수가 아니라 악마로 치환해버렸다. 그리고 그 악마를 제거하는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 신앙에 입각해서 정당화시켰다. 이런 추세는 특히 냉전을 거치면서 악화되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를 악마로 지목해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을 자행했고, 9·11테러 이후에는 이슬람권의 테러 세력을 악마로 지목해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마와 싸우는 미국의 ‘십자군 전쟁’에서는 어떤 윤리적 고려도 불필요하게 되었다. 예컨대 선전포고는 전쟁 당사국이 묵시적으로 공유했던 대표적 전쟁윤리였다. 그러나 미국이 볼 때 그런 윤리는 악마에게 사치에 불과할 뿐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탄 버락 오바마가 빈 라덴을 선전포고 없이 암살해버린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요컨대 미국의 십자군적 전쟁관은 기존의 전쟁윤리를 모두 전복해버리는 악마적 습성을 탄생시켰다.
내가 미국의 십자군적 전쟁관을 고찰하면서 심각하게 우려하는 문제가 또 하나 있다. 마찬가지로 십자군적 전쟁관이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서도 강력하게 관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전후 ‘빨갱이 소탕’을 명분으로 무려 100만여명의 양민을 학살한 것도 미국의 십자군적 전쟁관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북한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간주하는 미국의 사고방식이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냉전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 사고방식에 따르면 한반도의 분단은 영원히 지속될 수밖에 없다. 북한이라는 악마는 정치적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끝끝내 제거해야 할 악마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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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12%%] 미국의 군사주의는 미국 자체의 건강성 또한 파괴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다. 미국이 선도하는 자본주의의 장점으로는 자유로운 경쟁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시장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사주의가 부양한 군산복합체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상대로 무기를 판매한다. 국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무기를 구입한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의 건강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거쳐 자본주의의 시장 질서가 무너지게 되면 민주주의의 주역인 중산층 또한 몰락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얘기는 비현실적 가정이 아니라 지금의 미국에서 적나라하게 전개되는 현실이다.
미국의 선조는 전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언덕 위의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국은 현재 인종주의와 군사주의가 결합된 원죄를 세계에 끊임없이 강제하는 패권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미국은 냉전 종식 직후 세계 최고 수준의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쇠퇴하는 모습을 역력하게 보여주고 있다. 쇠퇴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군사주의라는 원죄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 나가 막대한 비용이 드는 전쟁을 끊임없이 자행하고 있는데 어찌 국력의 소진을 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미국은 자국의 미래를 진정 위한다면 원죄인 군사주의와 인종주의를 혁파할 필요가 있다. 나만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미국이 안주하는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미국은 적대국을 악마로 간주해서 섬멸하는 대신 그들 또한 미국이 신봉하는 ‘신의 선물’(godsends)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고, 그들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삶의 윤리를 창출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미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 또한 달라지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선조가 꿈꾼 언덕 위의 도시가 바로 거기에 있지 않겠는가?
집필 이현휘 제주대 특별연구원·구술정리 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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