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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핵확산과 슈퍼노트/정의길 |
포르투갈의 위조 전문범 알베스 라이스는 1925년 포르투갈 이스쿠두화 발행 제조창을 이용해 사기를 쳤다. 제조창에서 직접 500이스쿠두 지폐 58만장을 인쇄해 유통시켰다. 기술적으로는 위폐가 아닌 셈이다. 나중에 들통났으나, 그가 불법 발행한 지폐들을 식별할 방법이 없었다. 포르투갈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당국은 모든 지폐를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수거할 수밖에 없었다.
위폐에 가장 시달리는 미국 달러화의 경우, 매년 전 세계 유통량의 10%에 해당되는 위폐가 만들어지며, 이 중 10%가 실제 유통된다고 추정된다. 달러 위폐의 역사를 새로 쓴 초정밀 위폐, 곧 슈퍼노트는 1990년 발견된 ‘PN-14342’가 시초다. 요판 인쇄를 통해 표면이 오톨도톨하게 제작되는 등 공권력의 묵인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지폐로 평가됐다.
슈퍼노트는 이란이 팔레비 국왕 시절의 장비로 제조해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으로 수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현재 슈퍼노트가 가장 출몰하는 곳은 동남아다. 최근에는 북한이 제조한다고 미국 쪽이 주장해 6자회담 재개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슈퍼노트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확인된 적은 없다. 이번 북-미 뉴욕접촉에서도 미국은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폐는 미국에게는 안보문제다. 위폐 단속을 하는 비밀수사국(시크릿 서비스)이 대통령 경호 및 방첩 활동 등 국가안보 핵심을 책임지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비밀수사국은 9·11테러 이후 재무부에서 신설된 국토안보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미국 안보에서 군사적으로는 핵확산, 경제적으론 위폐문제가 핵심이란 의미다.
미국은 북한을 핵확산 주범으로 몰아붙이다가, 이제 위폐 확산의 본산으로 공격 방향을 전환했다. 미국의 군사·경제 안보의 약점을 북한이 틀어쥔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 북한에 책임을 돌리는 것인지는 아직 진행형이다.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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