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27 19:35
수정 : 2006.04.27 19:35
유레카
미국의 문민통제가 파열음을 내고 있다. 퇴역 장성들이 잇따라 이라크 전쟁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문민의 군 통제 전통이 확고한 미국에서 이라크 침공의 주역인 국방장관에 대한 집단적 사임요구는 이라크 사태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도 당시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에 대한 사임 여론이 분출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결국 맥나마라 장관은 스스로 물러났다. 그 뒤 미국은 철수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사임한 뒤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 개입이 잘못된 정책이었음을 시인하고 반전주의자로 변신했다.
좀더 극적인 문민 갈등의 사례로는 한국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정면출동이다. 맥아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면 중국 본토에 원자탄을 투하해야 한다는 등 확전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3차 세계대전의 발발 가능성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를 해임함으로써 파동은 일단락됐다.
문민통제가 단순히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앉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국가안보 결정에 국가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함으로써 안보문제를 세계 평화, 공존과 같은 상위의 국가적 목표에 종속시키려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한국에서는 민주화가 실현된 뒤에도 문민통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정권 시절 개각 때마다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이 검토되다가 막판에 무산되곤 했다. 군부 장악 실패 걱정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국방부가 발표한 ‘국방개혁 2020’에서도 합참의장 임명 때 인사청문회를 하는 정도의 빈약한 내용만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장정수 논설위원
jsj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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