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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4 22:31 수정 : 2006.06.04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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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3년 캐나다 총선에서 집권 진보보수당의 몰락은 현대 선거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의회 과반인 169석의 집권여당이 2석으로 궤멸해 해체된 것이다. 브라이언 멀로니 당시 총리가 캐나다의 고질병인 재정적자를 해소하려고 연방부가세 도입이라는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 원인으로 흔히 거론된다. 그 십자가의 본질은 간접세의 확대였다. 법인세에 해당하는 생산자판매세를 없애고, 부가가치세 같은 ‘물품용역세’, 즉 연방정부가 모든 품목에 부가하는 세금을 신설한 것이다. 모든 캐나다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간접세를 확대해 재정적자를 메우는 손쉬운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1867년부터 자유당과 정권을 주고받은 진보보수당은 친미적인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당에 비해, 미국과의 관계에서 캐나다의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정체성을 지녔다. 진보보수당은 1984년 총선에서 282석 중 211석을 차지해, 캐나다 선거사상 최대의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1988년 선거에서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즉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 추진을 내걸어 의석을 대폭 잃었다. 멀로니는 특히 나프타 추진 과정에서 캐나다의 복지국가 시스템을 훼손했다. 공공의료에 대한 지원금 삭감, 민영화 등으로 미국식 체제를 흉내냈다. 걸프전에도 대규모 병력을 파견해, 캐나다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번 이라크전에 캐나다가 참전하지 않은 것도 당시의 교훈 때문이다. 멀로니는 캐나다가 아니라 미국을 위해 십자가를 멨다는 비아냥을 들었다. 당의 정체성을 훼손한 것이 진보보수당 궤멸의 근본 원인인 셈이다.

지난해 노무현 대통령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당의 희생도 감수했다는 어조로 멀로니를 거론했다. 열린우리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광역의원을 한 석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대패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정의길 국제팀장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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