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3 19:26
수정 : 2006.06.13 19:44
유레카
4년 전 한·일 월드컵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는 박지성 선수가 만들었다. 그는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세리모니를 하지않고 벤치로 곧장 달렸다. 그리고는 거스 히딩크(59) 감독의 품에 뛰어들었다. 히딩크 감독에게는 이런 장면이 많다. 브라질 출신의 골잡이인 로마리오(40)가 에인트호벤에서 뛸 때였다. 스페인에서 열린 경기 시작에 앞서 그가 갑자기 벤치의 히딩크 감독에게 달려가 양볼에 키스했다. 10만 축구 팬 앞에서 감독에 대한 충성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히딩크에 대한 열풍이 호주에서 뜨겁다. 호주 대표팀의 슬로건은 “거스 없이는 영광도 없다(No Guss No Glory)”이다. 또 호주인은 그를 자기네 사람이라는 뜻에서 “오지 거스(Aussie Guus)”로 부른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뒤 우리가 그에게 명예 한국시민권을 부여했던 것과 비슷하다.
그저께 일본을 역전승으로 이긴 뒤, 호주 대표 선수들은 한결같이 ‘히딩크는 천재’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평했다. 앞서 일간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지난해 말 히딩크 감독에 대한 장문의 분석 기사에서 그를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2차대전 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던 아버지에게서 배운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진 품격있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과의 경기가 끝난 뒤 퇴장하는 호주 선수들 한명 한명의 등을 두드리거나 포옹했다. 역시 애정을 표현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히딩크의 고향인 네덜란드 되팅겜은 2002년 한국관광객에 이어 올해 호주인들을 맞을 준비에 분주하다고 한다. 주요 건물의 바깥면을 지구의 배꼽이자 호주의 상징인 바위산 울룰루 그림과 사진으로 치장하고 있다. 훌륭한 지도자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대한민국도 행복하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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