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09 18:27
수정 : 2006.11.0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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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준 여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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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 1950년 어느날 밤. 뉴기니섬 두메 마을의 여인 60여명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채 숨죽여 불을 피웠다. 막 숨진 한 여인의 주검을 익숙한 솜씨로 잘라낸 이들은 망자의 살코기는 물론이고 뇌와 내장까지 남김 없이 먹어치웠다. 포레 부족 여자들에게 식인풍습은 주술적 의미에 더해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으며, 동물고기를 독차지하는 남자들을 향한 은밀하고 달콤한 복수였다.
#2. 1957년 봄. 뉴기니를 찾은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 가이듀섹은 ‘쿠루’라는 정체불명의 치명적 질환을 목격했다. 희생자들은 포레족 여인과 아이들이었다. 팔다리가 떨리고, 걸음걸이가 서툴고, 얼굴은 경련을 일으켜 기묘하게 웃는 듯 보였다. 병사자들의 뇌조직 세포들은 미세한 단백질 조직들이 엉킨 채 손상돼 있었다.
#3. 1985년 4월 영국. 한 수의사가 얼핏 쿠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질병으로 죽은 소들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소들의 이상 징후와 죽음은 급속히 확산됐으며, 1987년 영국 당국은 이 질병을 ‘소해면상뇌증’이라고 발표했다. 이후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는 것이 금지됐으나, 이미 카니발리즘, 즉 ‘동족포식’의 잔인한 복수가 인간의 목숨까지 빼앗기 시작한 뒤였다.
#4. 2006년 현재, 미국에는 1억500여만 마리의 사육우가 있다. 그 90% 이상이 공장형 농장에서 생산돼 농축단백질 사료로 속성되며 ‘축산 포디즘’ 방식으로 관리되다가 효율적으로 최후를 맞는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 앞서 미국이 내건 4대 선결조건 중 하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수입재개를 승인했고,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지난 7일에 하려던 미국산 쇠고기 엑스선 전수검사를 연기해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그 뒤엔 엄청난 금력과 로비력을 갖춘 미국의 초국적 축산자본이 어른거린다. 카니발리즘의 유령인가?
조일준 여론팀장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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