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19 18:45
수정 : 2006.11.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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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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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91년 말에서 92년 초 한반도 비핵화 선언,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북-미 고위급 접촉 등 숨가쁘게 진행된 한반도 해빙 무드는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로 일거에 얼어붙었다. 92년 5월17일 로버트 리스카시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현안이던 북한 핵사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93년 팀스피리트가 재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도널드 그레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허를 찔렸다”며, 자신의 대사 재임 기간 중 미국이 취한 대북정책 중 “가장 큰 실수의 하나”라고 돈 오버도퍼의 <두 코리아>에서 증언했다. 남북대화를 준비했던 임동원 당시 통일부 차관도 그 발표는 한국의 군부가 요청한 것이며, 한국 정부와 미리 상의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89년 육사 졸업식장에서 민병돈 육사교장이 “우방국과 적성국이 어느 나라인지 외면하는 위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를 비난한 바도 있다.
3개월 뒤 어렵게 재개된 남북 고위급 회담은 이동복 당시 안기부장 특보의 훈령조작으로 파탄이 났다. 이산가족 만남 장소를 판문점이 아닌 남·북의 고향으로 하라고 대통령의 훈령을 조작해, 북한의 거부를 유도한 것이다. 그는 서울 귀환 뒤 해임됐으나, 전말은 야당 의원의 폭로가 있고서야 밝혀졌다. 당시 미국의 로버트 갈루치 대북특사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한국 쪽의 “놀랍게도 부정적인” 자세에 당혹했다며, “그들이 (북한 핵) 문제를 풀기를 원하는거냐”고 털어놨다고, 미국의 북한 전문가 샐리그 해리슨은 <코리아 엔드게임>에서 전했다.
한반도 해빙 무드 때마다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던 이들이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강경 대외정책을 주도한 네오콘과 호응했음은 물론이다. 네오콘은 파탄난 대외정책의 책임을 톡톡히 치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파트너들은 건재하다. 숨어있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카멜레온 네오콘’이 아닐 수 없다.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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