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11.22 18:43
수정 : 2006.11.22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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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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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때 세르비아계는 국제연합군 병사 300여명을 인질로 잡고 그 가운데 3명을 탄약저장소 쇠기둥에 묶어놓은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나토군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인간방패’로 삼은 것이다. 일종의 인질극인 인간방패 전술은 그에 맞서는 사람들을 도덕적 딜레마에 빠뜨린다. 죄없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면서까지 적을 공격하기란 쉽지 않다.
자발적으로 인간방패가 되는 이들도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인간방패 프로그램(HSP)과 이라크 평화팀(IPT) 등 반전운동 단체들은 2003년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기 위해 인간방패 지원자들을 이라크 영내로 들여보냈다. 이달 초 팔레스타인 여성 200여명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하마스 무장요원들을 보호하려고 인간방패로 나서 60여명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스라엘 쪽이 인간방패들한테 총을 쏘아 12명의 사상자가 나자, 유엔은 총회를 열어 이스라엘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자발적으로 참가했든 강제로 동원됐든, 인간방패를 불가피하게 희생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데 많은 윤리학자들이 동의한다. 테러범이 인질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해치도록 하는 경우다.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으면 테러범들은 그런 인질극에 길들여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경우 인질은 인간방패라기보다는 인간무기다.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인도적 대북 지원이 끊겨가고 있다. 미국 인권운동가 팀 피터스는 지난 21일 “지난 90년대 수백만 주민의 생명을 앗아간 기근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 북한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앞에서 든 세 가지 사례 중 어디에 해당할까? 불가피하게 희생시켜야 할 인질들일까?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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