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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1 14:43 수정 : 2019.12.02 02:40

‘82년생 김지영’도 개띠지만, 그래도 개띠 하면 58년생이다. 출생 당시 기준 100만명가량의 거대한 인구 집단으로 한국 사회 곳곳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고, 앞으로도 남길 것 같다. 출생 연도와 그해의 상징 동물을 조합한 ‘58년 개띠’가 마치 특정 명사처럼 굳어져 널리 쓰이는 게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을 터다.

작년에 환갑을 넘기고 내년 국민연금 수령을 앞두고 있음에도 1958년생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는 숫자가 지난 27일 나왔다. 기업분석 전문업체 한국시엑스오(CXO)연구소가 국내 1000대 기업(상장사 매출기준)의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대표이사급 최고경영자(CEO) 1328명 중 단일 출생연도 가운데선 58년생이 93명(7.0%)으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류진 풍산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 옥경석 (주)한화 사장, 남준우 삼성중공업 사장이 여기에 들어있다. 58년생에 이어 61년생 90명, 62년생 80명, 59년생 77명, 57년·64년 각각 71명 순으로 많았다.

통계청 인구 추계로 58년 출생 인구는 92만17명으로, 처음 90만명을 넘었다. 출생 신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미뤄지는 일이 잦았던 시절이라 실제로는 이보다 많이 태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에 전국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통계청의 인구 센서스에서 당시 2살이던 58년생은 101만3427명으로, 57년·56년생보다 10만명가량 많았다. 한국전쟁 직후의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중에서도 중심이라 할만하다.

58년 개띠가 1974년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이전과 달리 본고사 없이 연합고사 결과로만 학교를 배정받은 이른바 ‘뺑뺑이 세대’의 첫 주자였음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학생 수가 많다 보니 ‘콩나물시루 교실’이라는 조어를 낳았다. 성년에 이른 1979년 유신정권 몰락, 이듬해 5공화국 탄생이라는 정치적 격변을 겪었고 ‘사회의 허리’ 40대에 접어든 1998년에 외환위기를 맞은 비운의 세대이기도 하다.

58년 개띠의 신산한 인생 역정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 담겼다. 서정홍은 공장 노동자의 삶을 묘사한 시집 <58년 개띠>를 펴냈으며, 은희경의 소설 <마이너리그>는 58년 개띠 동창생 네 친구의 삶을 그리고 있다. 58년 개띠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 ‘용띠 위에 개띠’, 김태영 감독의 영화 ‘58년 개띠’도 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작년 개띠해를 맞으며 신문에 쓴 글에서 “58년 개띠를 알아야 시장에서 성공한다”고 했다. 환갑을 넘긴 시점에서도 70만~80만명에 이르러 “뒤따라오는 거대한 인구 집단과 함께 시장의 변화를 주도하는 첨병”이라는 것이다. 58년생 최고경영자 93명 중 절반을 웃도는 47명(50.5%)이 2020~2021년 사이에 공식 임기 만료에 이른다는 점도 그런 변화의 한 갈래다. 조 교수는 “여행, 금융, 노동시장, 부동산, 유통 등 많은 산업과 시장이 58년 개띠에 의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변화를 겪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돈 버는 실마리가 58년 개띠에 있다는 것이니, 주변에 58년생이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김영배 논설위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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