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2 16:21
수정 : 2019.12.23 02:37
국방부 누리집에선 ‘한국군의 해외파병 약사’를 1991년 이후부터 집계해놓고 있다. 이 집계를 보면, 우리 군은 1991년 1월 걸프전에 국군의료지원단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 7월 말까지 연인원 5만4707명을 외국에 파병했다. 8월 말 현재도 13개국에서 1093명이 임무 수행 중이다.
그러나 실제 첫 해외파병은 베트남 파병(1964~1973년)이다. 당시 베트남엔 연인원 32만명이 파병돼 5천여명이 전사했다. 대규모 참전은 한국 사회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자유세계 수호”를 위한 참전으로 미화했지만, 실제로는 달러를 벌기 위한 수단이고 ‘부도덕한 전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미국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라크 파병도 논란거리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정당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운 ‘이라크의 대량파괴무기 개발’은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파병 반대 여론이 거셌지만 정부는 ‘파병의 대가로 북핵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자’며 비전투병 파병을 결정했다.
가장 조명을 받은 파병부대는 청해부대였다. 청해부대는 2011년 1월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에 해군 특수전여단(UDT/SEAL)을 투입해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했다. 이른바 ‘아덴만 여명작전’이다.
해외파병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이란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의 안전 보장을 위한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잇는 호르무즈해협은 전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0%가 드나드는 전략 요충이다. 국내 수입되는 원유의 70%도 호르무즈해협을 지난다. 그만큼 이곳의 통행 안전은 국익과도 직결된다.
그러나 이곳의 안전 문제는 미국이 이란과의 핵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해서 생긴 것이어서 파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런 사정으로 정부는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 있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까지 확대하는 방식으로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한다. ‘동맹’의 이름으로 가해지는 해외파병 압력에서 자유로울 날이 언제 올까.
박병수 논설위원
suh@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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