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31 17:29
수정 : 2020.01.01 02:36
기원전 1750년께 만든 바빌로니아 왕조의 <함무라비 법전>은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누워 있다 붙잡혔으면, 그들을 묶어 물속에 던진다. 단 그 주인이 아내를 살려주면 왕은 자기의 종(남자)을 살려준다’고 규정했다. 사면권을 규정한 가장 오랜 기록으로 평가된다. 군주의 사면 특권을 보통법에 명시한 건 15세기 영국의 헨리 7세 때다. 미국은 1787년 헌법에 사면권을 규정했다.
<삼국사기>엔 고구려 유리왕 23년 태자 책봉 축하 대사령, 신라 문무왕 9년 삼국통일 축하 대사령 등 사면 기록이 등장한다. 조선 태종·중종 때는 잦은 사면이 범죄를 부추긴다며 왕에게 ‘사면 자제’를 요청한 상소문도 등장했다.
1948년 7월 제헌 헌법에 사면권을 규정한 정부는 그해 9월29일 6796명을 사면했다. 최초의 특사였다. 역대 대통령은 국회 동의를 거쳐 특정 범죄의 공소권을 없애는 일반사면보다 특정인을 지정하는 특별사면을 선호했다. 일반사면은 9번에 그쳤고 특별사면은 99번이나 남발했다.
1987년 6월항쟁 직후 ‘7·9 사면’, 88년 ‘12·21 사면’은 시국사범 중심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돈명·백기완·이해찬·장기표·김남주·문부식 등이 사면 대상이었다. 하지만 국민 통합을 명분 삼은 특별사면 대부분이 측근 보은 또는 재벌 봐주기 논란을 일으켰다. 2013년 ‘1·31 특사’는 측근 사면의 대표 사례다. 퇴임을 앞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측근을 대거 사면했다.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1993년),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과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2007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2008년),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2015년),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2016년) 사면 등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한 총수 사면은 셀 수 없을 정도다.
2009년 ‘12·31 특사’는 이건희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위한 ‘1인 사면’으로 기록됐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명분이었다. 12·12 군사반란 및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 받은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1997년 ‘12·20 사면’은 그들보다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평등권을 침해했다는 헌법소원을 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를 맞아 이광재 전 강원지사 등 정치인과 선거사범을 사면해 ‘총선용 사면’ 논란을 불렀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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