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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100돌 맞는 한글학회 김승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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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만난 사람]
창립 100돌 맞는 한글학회 김승곤 회장
국어강습소 제2기 하기 강습회가 1908년 7월7일부터 열렸다. 8월31일 강습생 졸업식, 같은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국어연구학회’(한글학회 전신) 창립총회가 열린다. 강습소와 학회는 주시경 등이 주도했으며, 강습생과 학회 참여자로 김정진·김두봉·윤창식·신명균·이규영·권덕규·장지영 … 등이 있었다.
창립 100돌을 즈음해 학회와 한글문화 중흥 일에 애쓰는 한글학회 김승곤(81) 회장을 만났다. 그는 건국대학 국문과 교수를 거쳐 부총장을 지냈으며, 2007년부터 회장으로 있다. <한국어통어론>, <현대 나라말본> 등의 저서가 있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신문로 1가 한글회관 5층 회장실에는 1942년부터 45년 사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선열 33인과 역대 학회 간사장·이사장·회장들의 사진이 걸려 무겁고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국어 바탕해 언어정책 세워야 제대로 대처 못한 우리 책임도 커
대학 우골탑 만드는 ‘영어로 강의’ 학문 질 떨어뜨리고 정체성 헤쳐
100돌 기념관 지으면 국민에 개방 정부·민간의 재정적 지원 절실
-다가오는 8월31일이면 민간 학술단체로서는 처음으로 100돌을 맞는 줄 압니다. 뜻이 큰 만큼 기념행사 준비에도 바쁘시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행사로는 국제 학술대회, 한글학회 100년사 편찬, 100돌 기념관과 기념비 건립, 기념 전시회, 학회 발자취를 엮는 다큐멘터리 제작, 기념우표 발행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제 학술대회 주제는 ‘우리 말과 글을 미래로!’로 잡았습니다. 특히 ‘100돌 기념관 건립’ 계획은 한글문화 창달과 겨레정신을 구현하는 구심점으로 삼고자 추진했습니다만, 자체 재정만으로는 어려워 정부와 민간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언론 쪽에서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말글살이를 오늘날처럼 편리하게 하는 데는 그동안의 학회 활동과 연구에 힘입은 바 큰 줄 압니다. 한편으로, 십수 년 전부터 부쩍 영어교육 문제로 가계 부담뿐만 아니라 국력 낭비가 심각해진 지경이고, 관련 정책도 파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100년 사이 한자→일본어→영어로 실체가 바뀌었을 뿐이고, 요즘은 위정자, 자치단체들까지 나서서 영어쓰기를 부추기는데, 이런 행태를 두고서는 학회 쪽 대응이 무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영어숭배 풍조가 만연한 데는 학회 또한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습니다. 살림 형편상 연구 인력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점도 있고, 잘못된 세계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도 있습니다. 정부 책임도 큽니다. 어디까지나 국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정책 위에서, 외국어 또는 영어교육 정책을 다뤄야 할 줄 압니다. 사실 현재 시행되는 초·중등 영어교육 정도도 필요성과 적정선을 넘어선 과도한 상태입니다. 정부와 자치단체들의 영어마을, 영어특구 정책을 비웃으며 사교육과 조기유학이 만연하여 나라가 흔들리는 지경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어 공교육 강화를 외치는데, 이를 강화할수록 국어와 바탕 학문과 전통문화는 힘을 잃고, 사교육은 비례하여 성행하기 마련입니다. 제2외국어 교육은 기반조차 허물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서는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기 어렵습니다. 원천적으로 투자한 돈에 견줘 거두는 효과는 죽정이뿐이고, 잃는 것만 많은 정책이라고 봅니다.
지난 1월 말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내세운 영어 몰입교육 정책이 잘못됐음을 짚어 학술·시민단체들과 함께 반대의견을 밝힌 바 있고, 시국토론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연구하고, 학생으로 하여금 이를 필수로 수강하게 하는데, 그렇게 하여 우리말로 학문하기, 곧 진정한 한국학이 설 수 있다고 보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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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 서울 정동 세실레스토랑에서 시만단체들이 새 정부의 영어숭배 정책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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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강의’란 학문 연구 아닌 ‘학교 장사’ 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봅니다. 일부 수학이나 과학 쪽은 모르겠습니다만, 인문학을 비롯한 언어로 행하는 모든 학문의 질을 떨어뜨리고 정체성을 잃게 할 것이며, 그야말로 대학을 우골탑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봅니다. 전공분야를 연구하고 공부할 시기에 외국어 익히기에 시간을 다 보내서야 어느 겨를에 수준 높은 연구를 하겠습니까? 이는 한갖 수단에 지나지 않는 영어를 목적화한 것으로서, 교수와 학생은 물론 국민을 우민화하는 행위라고 봅니다. 반풍수 집안 망친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바깥 나라에서 한글·한국어 배우기 바람이 드세다고 합니다. 국내 이주민과 외국인 한국어 교육 현황은 어떻습니까?
“최근 외국에 세종학당을 세우는 일이나 기존에 교육부에서 세운 곳곳의 한국교육원 쪽의 한글교육 정책은 우리 문화를 세계화하는 거점·바탕이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그런 기관의 규모도 늘려야겠지만, 교육과정을 더욱 내실 있게 운영하고 점검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 학회도 일년에 두세 차례 국외 한국어 교원들을 초청해 연수회를 여는 등 국외 한국어 교원들의 질높이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학회 운영이나 임원 선출 방식이 폐쇄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학회는 이사회 합의로 운영하고 있으며, 평의원회에서 이사를 선출하고 이사들이 모여 회장을 뽑습니다. 학회 회원들이 평의원회 대신 총회를 통해 임원을 선출하고 사안을 논의하는 쪽으로 바꾸자고 한다면 충분히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한글학회는 재단으로 운영되는데, 한글회관을 개방하여 어문 연구단체의 구심점으로 활용하도록 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좋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100돌 기념관 짓기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도서관과 연구실들을 갖추고 활동공간을 늘려, 인문학의 구심점 구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실정으로는 최소한의 학회 활동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기념관을 짓게 된다면 국어 정보화, 세계 유수언어 기계번역, 한글문화를 세계화하는 일들을 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을 터입니다. 또한 나라 안팎의 연구자들과 국민에게 공간을 개방함으로써 연구·소통과 친화를 꾀할 수 있을 터입니다.
-100년 뒤 한글 또는 우리말의 모습을 내다보신다면? 미래학자들은 50년 뒤면 지구상에서 몇몇 언어만 남을 것이란 예측도 합니다.
“우리 스스로 하기에 달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경제 규모나 재외동포를 포함한 7천만 남북 겨레가 제 것을 아끼고 발전시키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가다듬어진 모습으로 발전돼 있을 것으로 봅니다. 말은 있으나 글자가 없는 나라들이 자기말을 한글로 쓰는 추세도 늘어날 것으로 봅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통신 발달의 바탕에는 한글의 과학성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아울러 챙기는 연구를 뒷받침하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처럼 남의 것에 휩쓸려 정체성과 자신을 잃게 된다면 아주 굴욕적인 모습으로 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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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 100년 해적이(연보)
1907년: 주시경 등의 주도로 서울 상동교회 청년학원, 보성중학교, 천도교 사범보습소 등을 옮겨가며 하기 국어강습소를 열어 1917년까지 이어지며, 국어연구학회·고등·중등·초등과를 합쳐 모두 575명이 졸업함
1908년:국어연구학회를 만듦. 참여자로 김정진·주시경·김두봉·윤창식·신명균·이규영·김병훈·권덕규·장두정·장지영·이재갑·주재정·남형우·이치규·김두종·박재서·김용배 …등.
1913년 한글모 만듦(회장 주시경, 한글모죽보기)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바꿈(회장 임경재)
1926년 가갸날 제정, 28년 한글날로 바꿈
1931년 조선어학회로 바꿈(회장 이극로)
1933년 한글맞춤법 통일안 등 4대 어문규범을 40년에 완성함
1942년 45년 광복 때까지 4년에 걸쳐 국어사전 편찬 등을 독립운동으로 규정하여 학회 회원 등 50명 가까운 이들이 옥고를 치르거나 수난을 당하는 조선어학회 사건 겪음.(이윤재·한징 선생 옥사)
1949년 한글학회(회장 최현배)로 이름을 바꿈. 이후 이희승·이만규·허웅·김계곤·김승곤 회장으로 이어짐
주요 간행물
1942~57년 <조선말 큰사전>(1~6권) 펴냄
1958년 <중사전> 펴냄
1960년 <소사전> 펴냄
1984년 <쉬운말 사전> 펴냄
1986년 <새한글 사전> 펴냄
1970년 91년까지 <한국지명총람>(남한) <한국 땅이름 큰사전> 펴냄
1992년 <우리말큰사전> 펴냄
학술논문집
<한글>(1927년에 동인지로 창간, 이후 학술 계간지로 278호가 나옴), 연간으로 <교육 한글> <문학 한글>이 있고, 월간으로 <한글새소식>(426호)을 내고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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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 기자
goljal@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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