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난 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인권을 짓밟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려는 세력과는 있는 힘껏 맞서 싸우겠다”고 말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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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만난 사람 소설가 공지영
인터뷰/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인권 짓밟고 표현의 자유 억누르려는어떤 세력과도 힘껏 맞서 싸우겠다 소설가 공지영(49)씨에게 지난 2011년은 일종의 ‘안식년’이었다. 소설집 <별들의 들판>이 나온 2004년 이후 소설이든 에세이든 그가 한 해도 책을 내지 않은 해가 없었는데 지난해 처음으로 신작을 내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책은 2010년 11월에 나온 에세이 <지리산 행복학교>였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가 그 어느 해보다도 바쁜 한 해였노라고 했다. 6월5일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뒤부터 연말까지 국제선 비행기만 10번 이상을 타야 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했는데, 그는 인터뷰 전날이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온전히 쉰 날”이라고 했다. 그를 바쁘게 한 일들은 특히 하반기에 몰렸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든 영화 <도가니>의 흥행과 사회적 파장에 따른 활동,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트위트 등을 통한 투표 독려 및 박원순 후보 지지 활동, ‘나꼼수’ 미국 공연 참가, 그리고 조중동 종편 출범 직후 가수 인순이와 김연아 선수의 종편 출연을 둘러싼 트위트 논란 등이 대표적이었다.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뒤에도 그는 6일 낮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나와라 정봉주’ 국민운동본부 발대식에 참석한 데 이어 7일 다시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난해 권위있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연말에는 인터넷서점 인터파크가 선정한 ‘2011년 최고의 작가’ 상을 받았다. “인터파크 시상식은 12월21일이었는데, 그날이 나로서는 아주 기쁜 날이었다. 그날 아침 광주에서 <도가니>의 주인공들인 인화학교 출신 장애 청소년들이 ‘카페 홀더’를 개점했다. 그 개점식에 참석하고 올라와서 저녁에 상을 받았다. 소설 <도가니>로 결실도 맺고 상도 받고 한 셈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책이 <도가니>가 될 것 같다. 아주 많은 일을 해낸 책이기 때문이다.” -인화학교 졸업생들이 주축이 된 공동체 ‘홀더’(‘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뜻)가 자립을 위한 카페를 열기 위해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출판사 창비와 함께 5000만원씩을 쾌척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원래 기부를 많이 한다.(웃음) 당연히,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자립하는 게 가장 좋으니까 당분간 지켜보고 있었는데, 모금이 더디다는 말을 들었다. 카페 창업에 1억원 정도 든다길래 창비에 5000만원씩 내자고 제안했고 창비가 흔쾌히 받아줬다. 현장에 가 보니 <도가니>의 모델이 되었던 아이들이 너무도 예쁘고 밝고 멋있어졌더라. 감사해서 많이 울었다.” -12월5일에는 제35회 이상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그날 수상 소감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도 억압받고 약하고 짓밟히고 빼앗기는 사람들을 위해 더욱 편파적으로 나의 인생을 바쳐 그들을 묘사하겠다 (…) 이 땅에서 드물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았고, 밥과 술을 풍족히 제공받았으며, 독자들에게 지지받고 보호받고 그리고 상처받은 작가로서, 이제 23년차가 된 소설가로서, 교육받은 시민으로서,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로서 아무 두려움 없이 인간 조건의 기본 전제이고 민주주의의 초석인 표현의 자유를 향유할 것이며, 이것을 억누르는 어떤 것과도 맞서 싸울 것을 약속한다’는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수적인 이상문학상 시상식장에 파열음을 낸 매우 ‘선동적인’ 내용이었는데, 파장을 염두에 두고서 일부러 한 발언이었나? “물론 의도한 것이었다. 작가들이 그동안 너무 유순해진 것 같다. 우리 문학은 양날의 전통이 있는데, 그중 한 축인 현실과의 관련성이 지나치게 위축돼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런 분위기를 깨고 싶었다. 그리고 당시 인순이·김연아 관련 트위트 발언으로 내가 보수언론한테서 집중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빌려서 내 생각을 밝히고 싶기도 했다.”
-수상 소감 말미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카잔차키스의 이런 발언을 인용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어떤 취지였나? “요즘 내 생각이 그렇다. 무언가를 원하는 데서 두려움이 나오는데, 나는 원하는 게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도 없다. 요즘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 같아서 내가 거꾸로 더 이런 포즈를 취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려울 게 뭐가 있겠나? 그래 봤자 나를 감옥에 보내거나 망신 주는 정도 아니겠나? 나는 일생을 통해서 돈도 명예도 권력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도 없다. 요즘 나는 마음이 굉장히 가볍고 행복하다. 요대로만 잘하면 나중에 죽어서는 날아서 하늘로 올라갈 것 같다.(웃음)” -평론가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수상 결정을 보면서 평론가들이 드디어 백기를 들었구나 하는 생각도 했나? “평론가들을 의식하지 않은 지 10년 됐다. 내가 만약 60년대에 등단해서 지금처럼 20여년 정도 글을 써 오고 있었다면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평단이 매우 중요했고 권위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21세기는 각성된 대중 엘리트의 시대라 생각한다. 직업 평론가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 하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된다. 그리고 나는 다행히도 보통사람으로서 각성한 대중 엘리트의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과 행보를 같이해 올 수 있었다. 나는 거대 신문과 권력층으로부터 미움 말고는 받은 게 없지만,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시대와 함께 걸어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행복하게 생각한다.” -문단 활동이랄까 동료 문인들과의 교유가 드문 편인 것 같다. 이상문학상 시상식에도 전년도 수상자인 소설가 박민규 말고는 문인들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대신 트위터 친구들과 ‘나꼼수’의 정봉주 전 의원 같은 이들이 수상을 축하해 주던데? “문단 인사들과 만나면 터무니없는 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의례적인 인사나 주고받을 뿐이다. 트위터에서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니까 시간 낭비도 덜 하게 된다.” -트위터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하게 되었나? “<지리산 행복학교>를 신문에 연재하던 2009년 5월쯤이었다. 내가 독자들 만나는 걸 싫어하니까 출판사에서 대신 트위터를 하라고 하더라. 나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없고 블로그도 하지 않기 때문에 싫다고 했는데, 스마트폰을 사준다는 말에 혹해서 일단 계정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정말 재밌는 거라.” -트위터의 매력이라면 어떤 걸 꼽겠나? “내가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걸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해서 안 만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트위터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준다는 점에서 좋다. 만나면서도 안 만나고, 안 만나면서도 만날 수 있으며, 드러내고 싶은 것만 드러내고 드러내기 싫은 건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만 만나도 되고. 게다가 중요한 뉴스를 정확하고 빠르게 알려준다는 장점도 있다.” -가수 인순이와 김연아 선수가 종편에 출연한 것을 비난한 트위트로 한동안 구설에 올랐다. “누군가 그들의 종편 출연 사실을 알려주면서 내 생각을 묻길래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한 게 무슨 문제가 있나? 의견 표명의 자유가 있지 않나? 그걸 이상하다고 말하는 우리 사회가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내 발언 때문에 그들이 압박을 받았다면 내 발언 자체보다는 내 발언에 대한 언론의 반응에서 압박을 받았을 것 같다. 그들이 내 발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노코멘트했던데, 그게 감사하고 미안하더라. 연예인들도 이른바 ‘개념’을 가지면 좀 안 되나? 그러기를 바랐던 두 사람이기 때문에 실망도 컸던 거다.” 종편 발언 악플에 트위터 중단 생각
침묵이 더 위험하단 판단에 계속해 -트위터와 활발한 대외활동이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고 젊은이들의 의식을 바꾸는 효과는 있지만, 작가 개인으로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시간도 빼앗기고, 악플 때문에 마음이 다치기도 하고. “나는 작가 생활 23년 동안 줄기차게 악플에 시달려온 셈이다. 평론도 나에게는 대부분 악플이었다. 지금은 오히려 내가 볼 수 있고 반박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나한테는 악플이 큰 위해가 되지 않는다. 처음엔 악플 때문에 트위터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저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라 생각해서 계속하기로 했다. 입 다물고, 옳든 그르든 시끄럽지 않을 글만 올리는 것. 이것이 저들이 원하는 것이고, 그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위협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옳으냐 그르냐 따지지 않고 시끄러우니까 그만둬, 하는 것이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부터 나꼼수 멤버들과 함께 움직이더니 지난 연말에는 나꼼수 미국 공연에도 참여했다. 나꼼수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 같다. “나꼼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내 딸과 또래 친구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데에 나꼼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확인했다. 단식이니 길거리 농성이니 투신이니 삼보일배니 하는 식의 자학적인 운동은 죄송하지만 그만하고 시위 자체가 축제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점에서 나꼼수와 내 생각이 맞아떨어졌다. 또 언론사가 이토록 비열하고 이토록 무기력한 꼴은 유신 때 사춘기를 보냈지만 그때도 보지 못했다. 이 절망적인 시대에 나꼼수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 한다고 보기 때문에 돕기로 한 것이다.” -이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차이가 있다면? “박정희, 전두환 때는 우리를 폭력으로 쫄게 만들었다. 그래도 그때 인간은 그렇게 비참하진 않았다. 그런데 돈을 가지고 압박하면 인간이 정말 비참해진다. <도가니>에서 강인호가 결국 생계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 먹고사는 게 인간이 태어난 목적의 전부인 양 생각하게 만드는 비열한 정권, 스스로를 짐승처럼 느끼게 하는 정권이다.” -얼마 전 어느 신문 인터뷰에서 이 정권 아래에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던데? “원래 생각은 <도가니> 이후 아름다운 연애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정권 아래에서는 연애소설을 쓰기 위한 감정을 잡기가 정말로 힘들어서 일단 뒤로 미루었다. 대신 다른 소설의 맥을 잡아서 취재를 하고 있다. 3월 말 탈고가 목표다. 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 미국 뉴저지 뉴턴 수도원 등이 무대다. 이번에 미국에 가는 것도 소설 취재를 위한 것이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지만, 직접적인 정치적 주제보다는 더 크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소설은 엠비보다 오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꼼수, 20대 정치의식화에 큰 역할
시위가 축제 돼야한다 생각해 도와 -트위트를 보니까 사랑 이야기를 모집하고 있던데. 책으로 낼 계획인가? “3일부터 3월 말까지 에이4 두 장 분량으로 사랑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채택되면 소정의 고료도 주고 원하면 출처도 밝힐 것이다. 모인 이야기를 내가 각색하고 구성해서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를 책으로 낼 계획이다. 많은 참여 부탁드린다.(웃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솔직히 조금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아주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는 뷔페에서 몇 개의 정해진 음식 앞에만 하염없이 줄 서서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모습 같다. 다른 음식들은 다 식어 가는데 말이다. 저 순종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왜 반항도 안 하지? 늙은 거 아냐? 젊은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네 멋대로 하라,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남과 다르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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