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3.25 22:14 수정 : 2012.03.26 08:56

오늘날 핀란드 교육모델의 틀을 만들어놓은 전 국가교육청장 에르키 아호가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핀란드 교육모델’ 세운 에르키 아호

대담/권태선 편집인 kwonts@hani.co.kr

2000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피사)가 시작된 이래 핀란드 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학생들의 평균 학업성취도가 세계 최고 수준일 뿐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 역시 고른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핀란드 아이들은 사교육을 받기는커녕 학교에서조차 우리보다 훨씬 적은 시간 수업을 받는다. 그런데도 이런 성과를 내는 것을 핀란드 사람들은 모든 아이들에게 나랏돈으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제공하고 경쟁이 아닌 협동을 통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돕는 교육 덕이라고 설명한다.

핀란드가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육제도를 갖추게 된 데는 20년 가까이 국가교육청장으로 재임하면서 교육개혁을 진두지휘한 에르키 아호의 노력이 있었다. 교육전문가 그룹으로 구성되는 국가교육청은 핵심 교육과정을 입안하는 등 초중등교육에 대한 폭넓은 책임을 지는 기관으로 1960년대 이래 교육개혁의 두뇌 구실을 해왔다. 아호는 60년대 초 교육개혁의 기초가 된 ‘그랜드 플랜’의 입안에 참여한 뒤 35살인 72년 교육청장에 취임해 91년 그 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정당, 교사, 노조 등 교육개혁과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을 설득해 개혁의 우군으로 만들며 오늘날 핀란드 교육모델의 틀을 만들어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그는 지난 20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연 대담에서 개혁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배움과 돌봄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철학을 발전시키고 경쟁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교육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핀란드가 교육개혁을 본격 추진하게 된 계기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에프타) 가입으로 자유시장의 치열한 국제경쟁에 맞서게 된 것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경쟁에 맞서기 위한 교육으로 핀란드가 선택한 것은 형평성(equity)과 평등(equality) 그리고 협동을 강조하는 교육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일견 모순으로 보일 수도 있다. 에프타 이후 국제적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우리 역시 경쟁적인 경제체제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경쟁하며 자란다고 해서 나중에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건 아니다. 핀란드는 정의, 평등, 인권, 민주주의, 참여, 관용(톨레랑스) 등의 가치를 존중하는 북유럽 국가다. 또 교육개혁이 시작된 60년대 후반은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면서 평등이 특히 강조되던 시기였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을 줄이고 아이들이 협력적 수업을 통해 인성을 키우는 것이 핀란드란 국가 전체로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핀란드, 사회합의로 정권 바뀌어도 교육개혁 유지
1인GDP 3천달러(현재가치 1만4천달러)때 무상교육

-하지만 핀란드에서도 경쟁은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핀란드에서 존경받는 직업인 교사가 되려면 10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핀란드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존재하는데도 그것이 초중등교육을 왜곡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른바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의 최대 관심사다. 명문대학을 나와야 미래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모든 교육개혁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과 핀란드의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한다고 보는가?

창의성 죽이는 국가수준 일제고사 필요성 못느껴
교사 자율 보장해 다양한 재능 살리는 교육 해야

“핀란드에서도 변호사, 의사, 교사 등 선호하는 직업이 있고, 그 직업을 갖는 데 경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학생들이 일반대학보다 기술전문대학에 많이 가는 추세다. 굳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지 않아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간적인 삶이 보장되는 사회복지체제가 있기에 가능하다. 대학까지 학비가 없기 때문에 원하면 언제라도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 역시 경쟁을 완화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핀란드 교육개혁은 68년 본격 시작됐고, 선생께서 72년 국가교육청장이 되어 91년 그만둘 때까지 실질적으로 그 개혁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그 기간 동안 정부의 평균수명은 2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불안정한 정치적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개혁이 지속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는가?

“교육개혁 논의는 이미 60년대 초부터 시작됐고 68년에는 법으로 확립됐다. 하지만 법 통과 뒤에도 시범운영을 거쳐 72년에야 본격 궤도에 올랐다. 이렇게 충분한 사전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개혁이 시작된 70년대 초반에는 개혁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상태였다.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이 그대로 갈 수 있었고, 나 역시 교육청장직을 계속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또 핀란드 정부 관료들은 정치 변화에 관계없이 자리를 지키는 일이 많다.”

-우리나라에선 많은 경우 관료들이 개혁의 걸림돌로 비판을 받곤 했다. 정말 관료들의 저항이나 반발이 없었나?

“개혁을 실행할 때는 오히려 견고한 행정조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는 행정조직을 재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 관료들이 사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료들은 개혁 준비 과정에 참여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

-교사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개혁 초기 교사들의 저항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이미 50년대부터 지금의 종합학교(9년제 학교)와 같은 통합학교 형태를 지지해왔다. 하지만 5학년부터 선별된 학생들을 가르쳤던 문법(그래머)학교의 교사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어떻게 9년 동안이나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 모두 섞어놓고 가르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초등 교사들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우월감이 있었는데 이걸 무너뜨리는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교사들을 개혁의 파트너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개혁의 기초를 놓는 데 그들의 전문성을 폭넓게 활용한 것이었다. 개혁작업을 진행하기 위한 위원회에 교사들을 대거 참여시켜 공무원과 협업하게 했다. 이런 과정에서 교사들의 반발도 누그러지고, 초등교사들의 교원노조와 문법학교 교원노조 사이의 통합도 이뤄졌다.”

-개혁 과정에서 교원노조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여했나?

“개혁을 추진하는 데 있어 교원노조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핀란드에서는 일찍부터 고용주와 정부, 노조가 참여하는 노사정 3자 협상 테이블이 존재했다. 교육개혁 과정에서도 3자 합의 틀이 작동했다. 새로운 교육제도에 관한 계획과 결정은 거의 모두 교육부·시도협의회·교원노조의 3자 합의를 통해 결정했다. 교원노조는 교육과정 개편을 위시해 모든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토론하고 협력했다. 개혁 과정에 노조를 참여시켜 의사결정을 같이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게 개혁을 진전시키는 현명한 방법이다. 노조와의 갈등은 개혁을 파괴시키는 일이나 다름없다. 우리도 노조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뤄낼 수 있었다.”

-교육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개혁은 중앙집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텐데 개혁 과정에서 학교나 교사들의 자율성이 침해되지는 않았는가?

“말씀하신 대로 개혁은 중앙집권적으로 이뤄졌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짜고, 교과서를 제작하며, 필요한 재정을 준비하고, 학교 건물을 세우는 데 중앙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 그러다 82~83년부터 부분적으로 분권이 시작됐고 90년대 이후는 분권화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중앙 주도의 개혁과정이라 해도 개혁을 실제로 집행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다. 따라서 교사의 교육학적인 자율성은 확실하게 보장했다. 국가가 핵심 교육과정은 세우지만, 어느 교실, 어느 학교도 똑같은 형식, 똑같은 내용으로 수업하도록 요구하지 않았다. 교사들은 그들 스스로 만든 교과서를 사용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스스로 디자인했다. 교사들은 교육의 자율성과 자유를 보장받았고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그런 흐름 속에서 1980년대 중반에는 국가가 교사를 감시하는 장학시스템 자체를 폐지했다.”

-핀란드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 말고는 국가 수준에서 일제고사를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이것 역시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치의 하나가 아닌가?

“국가 수준의 시험이 왜 필요한지 도무지 모르겠다. 교사는 스스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진전 상황과 스스로를 평가할 수 있다. 전국적인 일제고사는 학교에 두려움과 불안만 야기한다. 교사가 일제고사에 나올 내용에 맞춰서 가르치는 데 집중하는 상황에서는 창의적인 교육이 될 리 없다. 우리는 우리 학교가 ‘시험 없는 지대’(test free zone)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 교육이라는 게 배움과 돌봄이라고 한다면, 그 대전제는 ‘시험 없는 학교’다. 일제고사 같은 시험이 없어야 교사는 더 중요한 질문에 집중할 수 있다. 다양한 학생들의 발전을 지원할 수 있고, 문제가 있는 학생에게 필요한 도움을 조직할 수 있다. 우리는 5년 동안 스스로 연구하는 자세로 교육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교사를 믿는다. 교사들은 스스로 교육적인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역량과 열정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일제고사는 필요가 없다. 시험 결과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제도 우리에게는 없다. 우리는 교사를 믿는다.”

-핀란드 교육은 모두에게 똑같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다. 그를 위해 종합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와 대학까지 교육비를 국가재정에서 책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무상교육이 시작된 것은 언제이며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어느 정도였나?

“세금으로 교육비 전액을 지원하는 이른바 무상교육 제도는 1972년에 시작됐다. 종합학교부터 대학까지 학비는 물론이고 학습자료비, 식비, 학교에 다니는 교통비, 건강검진 비용 등 교육 관련 활동에 드는 모든 비용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했다. 당시 1인당 국내총생산액은 3000달러 정도로,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1만4000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무상급식 논란으로 서울시장이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부자들에게까지 무료로 급식을 제공할 필요는 없다며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포퓰리즘으로 비판했던 시장이 주민투표에서 패배해 물러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보수층에서는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선별복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된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인적자원을 길러내는 교육은 우리 사회에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므로 부모들의 경제적 형편에 의해서 학생들의 교육받을 기회나 조건이 좌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의 돈이 아이들의 장래를 결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모두에게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핀란드인들의 기본적인 합의사항이다. 교육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교육문제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아이들은 지나친 경쟁 때문에, 학부모들은 그런 경쟁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고통이 심하다. 그래서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올해 새로운 교육개혁의 방향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20년간 개혁을 추진해온 경험에 비춰 한국 사회에 조언을 해주신다면?

복지기반·형평성 강조한 교육으로 ‘세계 경쟁력’
개혁과정에서 교원노조 참여로 국민 공감대 얻어

“배움과 돌봄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철학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초·중등학교에서부터 극심한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경쟁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 해도 충분하다. 아이들이 내적인 발전, 즉 개성과 다양한 재능을 발현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를 덜 경쟁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덜 경쟁적인 상태로 학교를 만들기 위한 아주 작은 시도라도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교육은 미래로 가는 다리다. 미래의 주역은 아이들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건강하고 강한 개성과 자존감이다. 동료와 무한 경쟁하게 한다면 모두가 패자가 된다.

사실 우리는 심대한 개혁을 했고, 그 개혁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토론이 있었다. 또 매우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어떤 개혁도 단시일에 이뤄질 수는 없다. 인내를 가지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뤄나가는 수밖에 없다. 교육에서 혁명적 변화란 불가능한 일이다.”

-지나친 경쟁 위주의 교육 탓인지 우리 학교에서는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핀란드에서도 학교내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는 등 학교폭력 문제가 없지 않은데, 이에 어떻게 대처하나?

집단 따돌림 치유 위해 ‘키바 프로그램’ 도입
공동체서 학생-교사 성찰적 토론으로 해결

“집단따돌림은 세계적으로 흔한 현상이다. 차별과 인종주의의 문제도 있다. 핀란드에서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4년 전쯤 특별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키바(KiVa) 학교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복잡하지 않다. 따돌림이 있을 때 우선 누구나 ‘멈춰’라고 외친다. 그리고 학생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깊은 토론을 한다. 가해자에겐 왜 따돌렸는지, 피해자에겐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묻고 함께 분석하고 성찰하는 토론이다. 토론을 통해 학생들은 일어난 일의 진정한 성격을 이해하게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또다른 목적은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협력하는 훈련을 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80%의 학교가 키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건 돈도 새로운 조직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학교라는 공동체가 이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이런 방식을 추천하고 싶다. 학교나 학급에 폭력이 있다는 건 그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거다. 공동체의 문제를 공동으로 풀어내도록 하는 게 근본대책이지, 가해자를 벌주거나 배제하는 방식은 해결책이 아니다.”

정리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한겨레가 만난 사람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