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문 호루라기재단 상임이사는 인터뷰에서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양심적인 모습을 보여준 중대장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다. 그런데 3년 전 우연히 전화통화를 해서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빚 일부가 해소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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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만난 사람] ‘군 투표부정’ 폭로했던 이지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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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사건도 국민참여재판 해야 -국정원은 내부고발자가 야당에 제보한 것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내부고발자가 100% 윤리적 인간이어야 정당하고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내부고발자를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내부고발자는 나를 포함해 평범한 소시민이다. 이번 국정원 내부고발자도 ‘우리가 할 짓이야’라는 자괴감, 안타까움의 발로에서 제보했다고 본다. 민주당에 제보했다는 것만을 문제 삼는다면 내부고발은 아무도 못하게 된다. 정치적 의도가 국정원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설령 있다고 치더라도, 없는 사실을 만들어 폭로한 게 아니지 않은가? 국정원 여직원 한명의 돌출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 행위이다. 미국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고발자도 일각에서는 에프비아이(연방수사국) 부국장이 국장이 못 되니까 내부고발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도청을 안 했으면 되는 것이다.” -내부고발자가 오히려 피해를 받는 게 현실인 것 같다. “2년 전 <한겨레21> 기사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대표적 공익신고 사건 36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12건만 비리 혐의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반면, 아예 사법당국 수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은 사건도 10건이나 됐다. 행정부와 입법부에 견줘 사법부 노력이 오히려 떨어진다. 법만 놓고 보면 미국에는 못 미치지만 제법 갖춰진 편이다. 부패방지법은 시민단체의 노력에 의해 국회에서 만든 성과였고, 공익신고자보호법은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사법부가 내부고발 사건에 대해 전향적으로 가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부패방지법과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내부고발자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있지 않은가? “내부고발한 국정원 직원은 이 두 법으로도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 직원이 고발한 것은 부패방지법상의 부패행위 대상인 것은 맞지만 경찰, 검찰,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문제를 일으킨 직원이 속해 있는 기관(국정원)이나 그 기관을 지도감독하는 기관에 신고해야만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은 민간인에만 해당된다. 비밀누설 면책조항 문제도 있다.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에 고발할 때는 비밀누설 면책이 된다고 보지만 시민단체나 종교단체, 언론에만 폭로해서는 면책이 안 된다. 이러한 법의 맹점 때문에 고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캐나다도 국가기관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지만 합리적 사유가 있을 때 대중공개를 인정하고 있다. 내부고발자를 보호해서 부패를 예방하겠다는 것이 법의 취지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사건에 대해 기관에 먼저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호하지 않은 것은 국가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내부고발자 지원단체인 호루라기재단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내부고발자가 찾아오면 우선 국민권익위에 접수하라고 한다. 언론 상대로 강의할 때도 ‘기자들이 제보를 받았는데 그것이 관련 법에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하면 기사화하기 전에 국민권익위에 인터넷상에서 신고하도록 알려주라’고 한다. 제보자가 보호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지문 중위가 1992년 3월22일 14대 총선 군 부재자 투표에서 광범위한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고 폭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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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자 보호 않는건 ‘국가 편의주의’ -노회찬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판결을 어떻게 보는가? “일종의 공익적 고발자라고 본다. 국회의원의 직무 연장선에서 일한 것이지만, 언론활동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부패행위에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다시 보니 우리 사회 최고 엘리트라는 대법관이 쓴 것인지 의심스럽다. 기자회견 때 보도자료를 준 것은 괜찮고 이것을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것은 안 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법원도 홈페이지 공간에 보도자료를 바로 올리고 있지 않은가? 또한 사건이 8년 지난 시점에서 폭로한 것은 공익성이 없다고 판단한 근거가 무엇인가? 그때 시점에서도 경제·정치권력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었고, 현직 검사도 있는데 말이다. 내부고발 사건도 국민참여재판 대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법원이 아니라 국민적 상식적 판단이 필요하다. 법원이 법조문에 매달려 판결하게 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내부고발자는 없다. 내부고발 과정에서 비밀누설 등 실정법을 어길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1992년 현역 장교(육군 중위) 신분으로 군 부재자 투표의 광범위한 부정을 폭로했다. “당시 나는 9사단 소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대대장이 직업 하사관과 장교를 불러서 정신교육을 했다. ‘대통령이 속해 있는 여당을 찍는 게 군인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중대장 소대장들은 자기 병력에 대해 책임지고 교육을 시켜라’라는 내용이었다. 그 뒤 4월에 있을 간부 고과평가 때 자기 병력들의 여당지지율이 반영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심한 데는 중대장 보는 앞에서 찍게끔 했다. 공개투표를 한 것이다.” 기자회견 직후 이지문 중위는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들에게 연행됐다.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사건의 파문을 우려한 군당국은 기소유예를 하는 대신 파면처분해 이등병으로 불명예제대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그 사건으로 그해 대통령 선거 때부터는 군 부재자 투표 제도가 바뀌어 여야 참관인이 참여한 채 영외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군 영창에서 풀려나오고 나서 열차 안에서 옆에 탄 현역 대대장이 그를 알아보고 “고맙다. 대선 앞두고 너무 홀가분하다. 안 그랬으면 어쩔 수 없이 부하들에게 정신교육해야 하는 게 힘들었을 텐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냥 눈감고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도 아니다. 표창원 교수처럼 정치적으론 합리적 보수 쪽이었다. 당시 우리 중대장만 유일하게 처음에 중립을 지켰다. ‘왜 군인들이 선거 때면 정치에 개입해서 욕을 들어먹는지 모르겠다. 우리 중대만이라도 편하게 내버려 두라’고 했다. 그런데 기무사에서 파견한 보안반장(대위)과 대대장이 압력을 가하자 그는 소신을 꺾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 이 순간 너희들에게 부끄러운 모습 보여서 미안하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았으면 1번(여당)을 찍어주었으면 좋겠다’라며 눈물을 흘리면서 나가시더라.” 그는 중대장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고발했을 경우 중대장이 받을 불이익 때문에 인간적 고민을 했고, 이문옥 감사관과 윤석양 이병이 신분상 불이익을 받는 것을 보고 1주일간 망설였다고 한다. 92년 장교때 대대장이 “여당 찍어라”
부정선거 무용담 듣고 분노·자괴감 -어떻게 결행했나? “결행 직전 부대 알오티시 모임이 있었다. 전역을 앞둔 선배 송별식 하는 자리에서 중대장들이 부정선거에 대해 무용담을 털어놓더라. 술 마시고 2차로 문산의 나이트클럽에 갔다. 장교들이 10살 전후의 어린아이가 하는 쇼를 즐기는 것을 보면서 ‘선거부정을 하고 이런 자리에서 잊어버리려는’ 모습을 보고 ‘이건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25살 청년으로서 젊은 장교로서 분노라고 할까, 자괴감이라고 할까…. 내가 말을 못하는 것은 ‘내가 단지 용기가 없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바로 한겨레신문사를 찾아갔다.” -후회하지 않는가?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다. 저도 후회할 때가 있다. 지난 20년 제 삶이 재밌기만 한 건 아니고 중간중간 힘든 시기가 있었다. 파면당하고 군에서 나와 5년 동안 다시 공무원이 못 되는 규정이 있어 공무원 시험도 못 보고 군 입대 전 입사한 삼성 복직도 취소됐다. 그러나 한편으로 많은 내부고발자 가운데 나는 행복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3년간의 재판을 통해 파면취소 판결을 받아 명예회복했고, 군 부재자 투표 제도도 개선됐다. 내부고발 성공의 두 가지 기준, 내부고발자 보호와 제도 시스템 개선이 내 경우에는 충족된 것이다. 사회의 관심도 받았다. 40대 가장 신분으로 내부고발한 이문옥 감사관 같은 분이 더욱 존경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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