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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20 19:45 수정 : 2013.05.21 08:53

방송인 김구라는 지난 6일 인터뷰에서 시사코미디 진행에서 자신이 경쟁력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면서 그 분야에서 유능한 진행자가 될 수 있도록 더욱 공부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지상파로 돌아온 방송인 김구라

지난 1년은 방송인 김구라에게 참으로 긴 세월이었다. 2012년 4월 그의 표현대로라면 ‘김구라는 공중분해됐다.’ 인터넷방송 시절,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대상으로 한 막말이 드러난 이상 방송을 더 할 수 없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퇴장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 탁월한 ‘구라쟁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 역시 어차피 복귀하려면 빨리 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5개월이 지나 케이블에 복귀했고, 지난달부터 지상파에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지상파 ‘이야기쇼 두드림’(한국방송 2채널, 이하 두드림쇼), ‘화신’(에스비에스)과 케이블 4개 등 모두 6개 프로그램을 누비고 있다. ‘분해 뒤 재조립’된 김구라의 예능감은 더 단단해 보인다. 말의 수위나 진퇴를 조절하는 데서 더 노련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6일 제이티비시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났다.

인터뷰/ 강성만 기획에디터 sungman@hani.co.kr

-지상파 복귀에 대한 시청자 반응은?

“인터넷 댓글은 잘 안 본다. 공중파 들어올 때, 우호적이지 않은 분들이 의견을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염려됐다. 아직까지는 조심스럽다. 다행히 ‘열심히 노력하는구나’ 봐주는 분이 많아 그나마 한시름 놓았다.”

-문화방송(MBC) 복귀는?

“지난해 10월에 (엠비시) 김재철 사장이 ‘김구라는 안 돼’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들어갔으면 저항감이 컸을 것이다. 지금 보면 잘된 것 같다. 일이란 게 순리가 있는 것 같다. (엠비시에서) 아직 연락은 없다. 그걸 섭섭하게 생각할 필요 없고, (제의가 있다면) 너무 감사하게 프로그램 하는 것이다.”

-종합편성채널(제이티비시)에서 프로그램 두개를 하고 있다.

“종편 프레임 안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방송인으로서 장사를 과거 명동에서 했다면 지금 조금 떨어진 회현동에서 하는 것이다. 장사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잘되면 나중에 명동 갈 수도 있다. 강용석씨가 방송에서 저를 보고 ‘오로지 돈만 보고 가는 사람’이라고 했다. ‘정확히 아는군요’라고 답했다.”

김씨는 자신이 성향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대중 연예인임을 강조했다. “지난 총선 때 김용민 지지 동영상으로 내가 정치지향적 연예인이라고 말한다. 오해다. 개인적 성향은 별로 없다. 연고전 앞에서 오징어 파는데 고대생이라고 밝히면 연대생이 살까. (우리 사회 좌·우가) 50 대 50이다.”

중3 아들 둔 학부모로서
내 나이 맞게 하려 신경 써

-시사코미디 진행자로 케이블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상파 시사코미디는 아직까지 먼 이야기인가?

“공중파는 너무 많은 분이 본다. 틀이 크다 보니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썰전’(종편 시사프로그램) 끝나고 난 뒤 (야당 성향인) 이철희씨 이야기 들어줬다면 ‘너 좌편향’ 이런 이야기 나온다. 강용석씨 이야기 듣고 그러면 (반대쪽에서) 말이 나온다.”

-김구라 예능의 원천은 호기심이라고 했는데.

“궁금한 게 많다. (어렸을 때) 한방에서 부모랑 잘 때 제가 엄마 아빠 이야기 귀 털고 듣는다고 엄마가 많이 이야기했다. 남 이야기에 관심 많다. 특히 재산이나 학벌에. 엠비시 파업 때 상황이 궁금했다. 일반 연예인은 별로 관심 없는데, 나는 (엠비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 구성을 어떻게 하는지 등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호기심이 방송에 큰 도움이 되나?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피디들이 ‘형처럼 속물적 근성 갖고 다방면에 관심 갖는 엠시 별로 없다’고 말한다. 이런 것들이 나만의 장점이라는 생각은 있다.”

모든 게 궁금한 건 아니다. “장사를 하는 처가에 놀러 가면 가만히 있다 온다. 장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관심 없는 이야기에는 시큰둥한 편이다.”

정치 직접 해보고 싶은 생각 없어
예전 인터넷 발언 아직도 부담

-김구라에게 엠비 정부란?

“2002년 인터넷방송을 했다. 30대 초반에 경제적으로 가진 게 없었다. 당시 인터넷매체 자체가 다 좌쪽이었다. 그러다 보니 좌쪽 프레임 안에 들어가, 그 전에 신문도 안 보고 살았는데, 신문 보면서 현안에 대해 욕하고 그러다 보니 작년 참사가…. 옛날에 막말했던 분이 대통령 되니 5년 내내 마음 졸이고 살았다. 방송진행자로서 좌우에 관심 없다. 방송하는데 마음은 항상 불안 불안했다. 5년 동안 가슴 졸이며 살았다.”

-엠비 정부를 평한다면?

“제가 (그런 생각을) 가질 만한 그런 게 안 됐다. 나는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불안한 상황이었다. (정권의 프로그램 하차) 압력은 없었다. 내가 압력으로 빠졌다면 김제동 못지않게 그랬을 것이다. 내가 심적인 부담을 느꼈지, 위에서 그런 것 없었다.”

-방송사 노조의 장기파업 상황에서 예능을 해야 했다. 심경이 복잡했을 것 같다.

“엠비시 (장기파업) 사태, 정상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라디오 스타’나 ‘세바퀴’ 안에 있었다. 신변잡기로 낄낄거렸다. 프로그램이 그랬다. 밖에 나오면 부담을 느꼈다.”

-공영방송까지 예능 시청률 경쟁에 몰입하는 것, 어떻게 보나?

“두드림쇼 엠시 기용에 대해 ‘옛날에 욕한 사람 시청률 오를 것이란 기대를 갖고 공영방송에서 엠시 쓸 수 있느냐’ 그런 이야기도 있다. 케이비에스가 공영방송이지만, 시청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시청자에게 인식돼 있다. 예능 피디들 가운데 시사에 관심 없는 분들 많다. 예능 하는 목적은 시청률이다.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스태프들과) 너무 세게는 가지 말자, 순차적으로 가야지, 너무 세게 가면 과부하가 걸린다, 그런 얘기는 한다.”

-지상파까지 스며든 독설, 막말 코드의 악영향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제가 뭘 되게 깊이 있게, 그런 인물이 아니어서. 그런 부분에 공감하고 이해는 한다.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면, 요즘 어떻든 사회 자체가 그렇게 흘러가면 되지 않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상황이다.

어떤 사람, 이렇게 이야기한다. ‘야, 너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난 놈이다. 옛날이라면 대기실에서 남들 욕이나 할 텐데.’ 충분히 공감한다. 나이 먹으니까, ‘기분 안 나쁘게 세련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나이에 맞게. 동현(아들)이 중3이고 (내가) 학부모인데, 이런 거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어쩌다 들기도 한다. 앞으로 노력을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세상 돌아가는 소식은 어떻게 얻나?

“책은 많이 안 보지만, 활자는 많이 읽는다. 책은 역사 쪽을 많이 읽는다. 포털에 여러 신문 등록해놓고 본다. 인터넷에서 좌우 맞추려고 두루두루 본다.”

다방면 속물적 호기심이 장점
시사코미디 잘하려 공부도 열심

-언론에 관심 많아 보인다.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 어떤가?

“얼마 전 대기업 변호했던 분인 한만수씨가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된 것을 두고 ‘보신탕 장사하는 분이 유기견협회 회장 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방송에서 이야기했더니, 박장대소가 터졌다. 비유가 좋았다고.

나는 개그맨이다. 손석희처럼 식견 있고 싶지도 않다, 지금 현재는. 내가 아무리 갖춰도 그분 따라가겠나. 약간 다른 길로 진행을 잘하고 싶다. 시사는 관심 분야다. 나이 들어 공부해서 식견 갖춰지면 이야기하겠는데….”

-정치를 직접 해보고 싶지 않나?

“옛날 인터넷방송 한 거 있는데 상식적으로…. 김용민 당한 꼴 봤는데, 내가 공직 나간다면. 주제를 안다. 관심도 없다. 비겁한 것 아니고 제 성향이 그렇다. 트위터 한번도 해본 적 없다. 인터넷방송 아무 생각 없이 한 것이 날 누르고 있고 앞으로도 나를 누를 것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음주나 이런 것 하나라도 걸리면 난 아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했다.

“무명 때 음주 한번 걸린 적 있다. 살얼음 걷듯, 그렇게 살고 있다. 과거 막말만 했지, 사는 것은 유재석이라고 농담으로 말했다. 그렇다고 가정적인 것은 아니다. 5년 긴장하고 살고 지금 긴장하고 앞으로도 긴장하고 살아야 한다. 마음 편하게 살자 생각해도 몸이 안 된다. 트위터에 저런 새끼 방송 쓰냐, 아직까지 그런 분 많다. 내가 이철희에 동조하면, ‘좌의 본능’ 가끔 그런 말 있다. 짜증나서 트위터 안 한다. 중심 잡고 가다 보면, ‘그런 놈인가 보다’ 하며 풀릴 때가 있겠지 생각한다.”

-김구라의 독설 앞에 ‘공감이 가는’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내가 강용석에게 ‘이제 우리 투아웃이다. 잘해야 한다’고 했다면, 그 사람이나 저에게 독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많은 분의 인식이다. (개그맨) 이윤석에게 ‘너 일생이 병풍 아니냐’고 한 것도 비슷하다. 남들 안 하는 이야기를 그 사람 앞에서 한다. 너무 밑도 끝도 없고, 웃기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면 많은 사람 안 웃어줄 것이다.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하다 보니 그런….”

-그런 내공은 타고난 것인가, 노력의 결과인가?

“둘 다이다. 예의상 안 물어보는 게 맞지만, 솔직하면 손해 보는 것 없다.”

-인간성이 좋을수록 예능에서 성공 가능성 큰가?

“요즘 같으면 그렇다. 예전에는 콩트를 심형래, 최양락씨가 데리고 했다. 폐쇄적이었다. 정치로 말하면 계파정치다. 요즘은 게스트를 모셔야 한다. 와서 이 사람(진행자) 때문에 재밌었다, 유쾌했다, 그런 느낌 있어야 또 나간다. 요즘 스태프도 엄청 많다. 늦고 예의 없으면 녹화 분위기가 안 좋다.”

-10년 뒤 모습을 어떻게 그리나?

“예전에는 ‘터는 것 잘하니 터는 쪽으로 가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이제는 어떤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지 알아가는 것 같다.”

-어떤 분야인가?

“시사코미디다. 그런 프로 하면 김구라가 잘해, 그런 이야기 들었으면 한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다.”

-김용민씨에게 섭섭한 마음도 있을 것 같다.

“(섭섭한 마음) 전혀 없다. 2003년, 인터넷방송에서 피디와 진행자로 만났다. 나꼼수 열풍 불 때 마음속에 불안한 게 있었다. 팽창하니까. 나는 몸으로 겪어왔다. 높이 올라갈수록 반대되는 게 생긴다. 총선 때 공천 받아서 불안 불안했다. 도와달라고 했다. 유세는 시간이 맞아야 하니, 지지 동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찍어줬다. 내가 아는 사람 국회의원 되면 나쁘지 않겠네, 그런 생각이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 대해 막말한 사실을) 내가 기억하고 있었다면, 용민에게 ‘문제 되니까 나가지 마라’고 했을 것이다. 잊고 지냈다. 지난해 6월에 같이 밥 한번 먹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네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이 괴물로 볼 수도 있다, 나도 맨 처음 그랬다, 네가 각고의 노력을 해서 (그 이미지를) 벗어야 좀더 많은 대중을 상대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너무 이쪽만 보고 가면 50%를 버리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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