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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1.06 19:21 수정 : 2014.01.06 21:49

이규상 대표가 서울 상암동 눈빛 출판사 사무실에서 25년 동안 만든 책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다. 이 대표는 “사진은 현재까지 오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청동거울과 같은 것으로 (사진을 찍는 것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25년 사진전문 출판 이규상 ‘눈빛’ 대표

이규상(53)은 1988년 11월에 눈빛출판사를 시작했고 지난해 25주년을 맞았다. 눈빛은 사실상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 전문 출판사다. 최근 <한국의 보도사진>까지 550종의 책을 냈고 종당 1000권씩 찍었다고 보면 55만권 정도 낸 셈이다. 눈빛 이규상 대표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무들에겐 미안한 일이다”라고. 이 대표를 지난 12월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눈빛’ 사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이 대표는 그동안 페이스북과 사진 관련 잡지 등을 통해 한국 사진계에 대한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왔다. 비판에 그치지 않고 대안도 제시했다. 이 대표가 한국 사진에 대한 애정이 깊은 사람이며, 사진집 출판을 통해 사진 독자층을 확대해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종이책의 위기도 심각하지만 사진 출판 시장은 더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일안반사식카메라(DSLR) 인구가 1000만을 넘었고 휴대폰 카메라를 포함한다면 국민 누구나가 사진을 찍는 시대가 왔지만 사진집은 잘 팔리지 않는다. 카메라 가격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사진집을 한 권이라도 가진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사진계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이규상 대표는 2013년 봄 한 작가의 전시 개막식 자리에서 “우리의 혁명은 사진의 다양성과 사진가의 탄생을 억압하고 제지해온 (사진계) 한국 사단의 그 교조적, 전제적 억압에 대한 반기다. 천박한 문화자본에 사진혼마저 팔아버린 우리 시대의 탕아들에 대한 준엄한 반역이며 도전이다”라는 내용의 사진선언을 했다.

-사진선언을 한 적이 있다. 실천방안은 있는가?

“한국 사진계는 몇몇 사진가 중심으로 편성돼 부단히 퇴행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그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구조를 한번 깨보자는 것이 사진선언의 취지였다. 사진은 지금처럼 무모하게 예술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기록이라는 사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사진가의 세대교체와 한국 사진에 대한 인식의 제고만이 한국 사진의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의 현실에 천착해온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현재 대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 사진계는 구체적으로 뭐가 잘못됐다는 건가?

“‘한국 사진계’는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몇 사진가들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다. 그들은 갤러리나 미술관과 밀월관계를 지속해오면서 권력화한 독점구조를 이루고 있다.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은 사진을 발표할 기회마저 봉쇄되었고, 그들의 독창성 있는 사진은 부단히 평가절하되어 왔다. 더군다나 권력화한 독점구조에 가세한 일부 사진평론가들을 중심으로 ‘작가주의’를 표방하면서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사진을 사유화하고, 사진의 저변 확대를 막아왔다. 우리의 현실을 기록한 사진가들을 매도하고 가장 민주적인 매체인 사진을 폄훼하면서 자신들만의 성역을 구축해온 것이다. 나는 이런 구조 속에서 젊고 유능한 사진가들이 좌절하는 것을 숱하게 목격했다.”

이 대표는 한 사진잡지의 기고문에서 “한국 사진계는 젊은 사진가들이 기존의 권위에 조아리며 그들의 교시에 추종하는 것을 보면 죄수들의 행렬을 보는 것 같아 끔찍하다. 그들은 끊임없이 몇몇 잘나가는 자칭 대가라고 하는 사진가의 사진만을 사진으로 알고 따라하고 있다”고 썼다.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게) 출판 작업에 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창업 초기부터 나는 기존의 권위에 기대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25주년을 맞이해 출판사 연대기를 작성하면서 보니 비교적 그 결심을 잘 지켜온 것 같아 다행이다. 사진 한 점에 수천만원씩 하는 이른바 잘나가는 사진가들을 쫓아다녔으면 경제적 형편은 좀 나아졌을지 몰라도 지금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잘나간다는 사진가들에 빌붙어 책을 내오질 않고, 나 스스로 절치부심하며 이 땅의 사진을 발굴해 사진 독자층을 형성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애당초 이해득실을 따져 사진 출판을 시작한 것도 아니고 사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기존의 사진계에는 별 신경을 안 쓴다.”

-2013년 박평종은 자신의 책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에서 최민식, 김영갑 같은 작가들을 “보편적 가치는 존중하지만 새로운 가치가 없으므로 B급 작가를 벗어날 수 없다. 대중들은 B급을 좋아하지만 전문가들은 B급 작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썼다. 그런데 지난 연말 그 평론가는 자신이 B급으로 분류한 최민식 선생의 이름을 딴 사진상의 1차 심사위원에 포함되어 심사를 했다.

“최근에 최민식 선생과 관련된 이야길 듣고 화가 났다. 돌아가신 지 1년도 안 되었는데 B급 작가 운운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것이 한 사진평론가의 판단이 아니라 기존의 한국 사진계의 의견을 대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최민식의 ‘인간’이나 김기찬의 ‘골목 안 풍경’을 부단히 저평가하거나 적당히 무시하면서 자신들만의 아성을 공고히 하려는 불순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싸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누구나 사진 찍는 시대지만
사진집은 잘 팔리지 않아
잘나가는 사진가 쫓아다녔다면
윤택해도 자유롭진 못했을 것

다큐작가는 스스로 뉴스 만들어야
삶의 현장 가라면 투쟁현장으로 가
독거노인 등 사회 저변 주목했으면
새로운 작가 발굴·소개가 내 소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시상하는 2013년 온빛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성동훈씨가 ‘코피노’로 상을 받았다. 제1회는 한설희씨가 92살의 어머니를 찍은 ‘노모’로 수상했고, 제2회는 김석진 교사가 학교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지속되는 과도기’로 수상했다.

“상 주는 사람보다 받는 사람들이 더 사진을 잘하는 것 같다.(웃음) 기성의 다큐사진가들도 그런 작업을 하면 좋겠는데 그런 주제의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적 시위나 노동쟁의의 뉴스 현장에 우르르 몰려가 찍은 사진 몇 장을 가지고 다큐멘터리 사진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는 스스로 뉴스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온빛상’ 같은 경우는 다큐사진가들이 모여서 새로운 다큐작가를 발굴하자는 것이니 사진의 저변 확대란 측면에선 긍정적이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 사진은 뭘 해야 하나?

“다큐작가들에게 삶의 현장으로 가라고 했더니 투쟁의 현장으로 가더라. 노동쟁의나 정치적 시위 현장에만 매달리지 말고 독거노인, 이주노동자, 원룸이나 지하 전월세방 거주자 등 사회의 저변을 주목해야 한다. 일본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선생은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작업을 기대한다면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될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까지 했다. 사진으로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으려면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도 한다면 시대상의 기록,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감동이 있는 기록이면 좋지 않겠는가.”

-현장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도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사회적 이슈를 찍고 전시도 하고 달력을 만들어 팔고 돕기도 한다.

“사진가는 냉정해야 한다. 사진과 사회운동은 구분해야 한다. 투쟁이 절실하다면 차라리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진가는 삶의 현장을 심도 있게 취재하여 그 진실을 좀더 널리 알려야 한다. 그리고 (경찰과의 대치나 주먹 쥔 시위자의 모습 같은) 우리가 다큐사진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첩되고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솔직히 한국 사진 재미없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이규상은 책상에 놓여 있던 임재천의 <한국의 재발견>을 끌어안고 이야기했다.

“임재천은 그의 나이(46)나 사진 경력으로 보아 충분히 중견 작가임에도 이제야 첫 사진집을 냈다. 그가 추구하는 사진의 완성도가 여느 사진가 못지않게 높음에도 아무런 평가조차 받지 못해왔다. 그런데 독자들이 평가해주었다. 대부분 상업출판을 하는 한국 출판계에서는 고작 1000부라고 비웃을지 모르겠으나 초판이 순식간에 다 나갔다. 독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독자가 구매행위를 통해 책을 샀을 때는 무언가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한국 사진에는 그런 것이 부족하다. 출판사와 사진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사진 전문 출판사의 대표로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다행히 우리의 현실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산천어와 쉬리 같은 토종 사진가들이 없지 않다. 따라서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그들의 작업을 중점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작가의 지명도나 학연, 지연 그리고 기존의 권위에 기대지 않고 새로운 작가들을 부단히 발굴해 소개하는 것이 나와 출판사의 소임이다.”

-눈빛에서 사진집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사진은 원래 민주적인 매체이므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아무나 사진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가를 판명하는 나의 기준은 그가 얼마나 대상에 충실하며 한결같이 자기 작업을 해왔느냐 하는 것이다. 거기엔 프로나 아마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의 눈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그리고 그의 기록이 훗날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지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잘 팔리지 않아도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이규상은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게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스스로 방점을 찍고 말했다. 독수리 날개처럼 두 팔을 벌리고 이야길 전개해나갔다.

“나는 경제적 성공은 없었지만 성취도와 만족감을 사진과 출판에서 얻었다. 우리가 과거에 두고 온 것들을 거울을 꺼내 다시 보듯, 사진이 훌륭하게 담아내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되돌려보자, 되살려보자. 그게 인문학이든 사진이든 사회학이든 그 중추에서 사진이 반짝반짝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우리 모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것이 어렵지만 당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고 만족을 얻으시라. 행복해질 것이다. 나는 사진 전문 출판을 통해 해왔으니 불만도 걱정도 없고 오히려 더 편안하다. 성공으로 가는 와중에 있다. 성공이란 것은 현실적인 조건에 제약받지 않고 내가 출판하고 싶은 책들을 마음껏 만들어내고 싶은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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