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과 친구하기 ■
“키 쑥쑥 크게 해주세요.” 울산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김아무개(11)양은 4학년 1학기를 갓 시작한 요즘 ‘키짱’이 되고픈 바램이 더욱 간절하다. 또래들의 평균신장 보다 10㎝ 가량 작은 김양은 한 학년 올라가 새로 반편성이 이뤄질 때마다 낯선 친구들 사이에서 유달리 작은 키 때문에 주목을 받는 일을 되풀이 해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년에는 제발 날 꼬맹이라고 놀려대는 애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김양은 지난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 31명(남 17명, 여 14명) 가운데 유독 사내애들 3명이 틈만 나면 놀려대곤 했던 일이 또 일어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김양의 작은 키는 여자한테만 발생하는 ‘터너증후군’이란 유전병에서 비롯됐다. 사람의 염색체는 23쌍 46개로, 터너증후군은 이 가운데 X 염색체 한 쌍(XX)으로 이뤄진 여자의 성염색체에 이상이 생긴 것을 가리킨다. 성염색체 이상 또래보다 10㎝작아
성장호르몬 맞으며 170㎝ 꿈꾸지만
웬만한 암보다 더 큰 의료비 부담 김덕희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소아과 교수는 “성염색체 이상을 갖고 태어난 여자들은 키가 잘 크지 않고 여성적 특징이 발달하지 않는 특징을 보인다”면서 “하지만 호르몬치료를 적절하게 받으면 정상인과 다름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몬제 약물이 개발되지 않았던 80년대 이전 터너증후군 여자들은 성인이 되어도 120~140㎝의 저신장에 중이염 같은 질환을 정상인 보다 자주 앓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치료만 받을 경우 160㎝ 가량 성장한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또 지능에는 거의 문제가 없어 터너증후군 환자중에는 현재 의과대학에 진학해 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도 있고, 불임 문제도 입양으로 해결한 부부가 많이 있고, 언니로부터 난자를 공여받아 인공수정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치과의사가 되고 싶고, 키는 170㎝까지 늘씬하게 크고 싶다는 김양의 꿈이 결코 불가능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양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매일 밤 9시면 어김없이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맞고 잠자리에 들어가는 한편, 피자와 햄버거, 과자 등은 입에도 대지 않고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만 먹고 있다. 집 밖에서 자야할 일이 있을 때는 보온병에 냉장시킨 성장호르몬 주사제를 꼭 챙기는 것은 물론이다. 김양은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사업에 실패한 부모와 떨어져 지리산 산골의 외가댁에서 자라다 2003년 초등학교 진학과 함께 부모와 함께 살게 되면서 뒤늦게 터너증후군 진단을 받게 됐다. 어머니 박아무개(39)씨는 “시골에서 자랄 때도 친정 아버지가 애가 너무 작다며 병원에 데려가볼 것을 권유한 일도 있었지만 막연히 시간이 지나면 자랄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에 진학시킨 뒤에야 키가 입학생중 가장 작은 것으로 나타나는 등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어 1학년말께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게 한 결과 그 원인이 터너증후군에 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박씨는 “성염색체 1개가 완전히 소실되어 키 성장장애를 겪는 것은 물론 신장도 두 개중 한 개가 없고 난소는 아예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하늘이 무너지는줄 알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터너증후군 환자와 가족들의 모임인 ‘소녀들의 모임’ 회장으로 일하면서 인터넷 다음에 터너증후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터너증후군이 여자 신생아 2500명당 1명꼴로 나타날 정도로 비교적 흔한 유전병이지만 공개될 경우 낙인이 찍힐까봐 염려해 환자는 물론 가족들도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리고 있는 풍토에 비춰 매우 적극적인 행동이다. 박씨는 “현행 건강보험은 터너증후군 환자는 마치 키 150㎝를 넘으면 안되는 것처럼 적용되고 있다”면서 “성장판이 열려 있어 키가 더 자랄 수 있을 때에는 150㎝를 넘어도 성장호르몬 치료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암환자 처럼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을 전체진료비의 10%로 낮춰줄 것을 정부 당국에 요구했다. 터너증후군 환자들은 성장호르몬 치료가 끝나면 그 시점부터 평생동안 여성호르몬 치료를 받아야 하는 등 웬만한 암환자 보다 오히려 의료비 부담이 더 클 수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보장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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