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이식 성공 1호 이정숙씨 “간, 심장 등 다른 장기이식은 수술비와 약값을 건강보험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데 소장 이식만 안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우리나라 소장 이식수술의 첫 성공사례로 꼽히는 이정숙(60)씨는 음식물을 소화해낼 수 있는 기능을 회복해 잃었던 건강을 되찾았지만 수술을 받은지 만 2년이 다 되도록 관련 법규정의 미비로 건강보험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장기이식법에서 열거해 놓은 이식 대상 장기 가운데 소장이 빠져 있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지원을 받지 못해 이식후 거부반응을 막아주는 면역억제제를 비롯해 매달 90만원 가량 들어가는 약값을 전액 자부담하느라 경제적 어려움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식수술비 8500만원은 친척과 이식수술을 실시한 강남성모병원이 도와줘 그나마 다행이었다. 자신에게 총 길이의 소장중 1m50㎝를 떼어준 고명딸 나명주(29)씨와 함께 전셋방에서 살고 있는 모녀의 월수입은 정부가 극빈층에게 지원하는 2인가구 기준 50만원 남짓한 기초생활보장 생계비가 전부다. 딸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것은 자신의 간병인 노릇을 하느라 돈벌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마와 함께 강남성모병원 장기이식센타를 방문한 나씨는 “기초생활보장 생계비로는 약값 대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친척들 도움도 한두번이지 한계에 도달했다. 그래도 엄마가 많이 건강해졌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를 잡기도 하지만 큰 도움이 안된다. 현재 신용카드 돌려막기로 약값을 대고 있는데 한도가 초과되면 어떻게 하나 막막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모녀는 지난 2002년 7월 이씨가 소장과 대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피가 굳어 막히는 장간막혈전증이라는 드믄 질환으로 썩기 시작한 소장의 대부분과 대장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기 이전에는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씨가 장절제후 6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은 뒤 퇴원해서도 정맥을 통해 직접 영양분을 공급해줘야 살아갈 수 있는 등 누군가 곁에서 보살펴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자 나씨는 간병인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딸이 소장 150㎝ 이식해주고 간병까지 맡아 돈벌이 못하는데
특수영양제·면역억제제 등 전면보험 안 돼 ‘발동동’ 이명덕 가톨릭의대 외과 교수는 “장간막혈전증은 주로 40~50대 이후에 발생하지만 위장염, 장염, 장폐색증 등과 구별되는 특이소견이 없어 확진하기가 매우 어렵다”면서 “8시간 이내에 막힌 혈관을 뚫어주어야 소장과 대장을 살릴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이씨의 경우도 뒤늦게 장간막혈전증을 발견했기 때문에 십이장과 대장의 일부만 살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모녀의 경제적 곤경은 소장 이식수술을 받기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씨는 3만5천원짜리 특수영양제를 매일 2병씩 맞아야 했으나, 집에서 특수영양제를 맞는 재가정맥영양법의 경우 일주일에 단지 2병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일주일에 필요한 특수영양제 14병중 2병을 제외한 12병(42만원어치)은 전액 자부담으로 구입해야 했다. 이씨는 장기간 정맥영양법을 실시한 결과 대정맥 등에 혈전증이 생겨 상부 중심정맥로가 폐쇄되는 등 소장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위급한 상태에 이르렀다. 소장이식은 지난 1990년 미국 피츠버그대학병원에서 처음 성공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800여건이 시술됐을 뿐이고 국내에서는 성공 사례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나씨는 꺼져가는 엄마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소장을 기증했다. 나씨는 “소장 이식수술만 하면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다”면서 “감기약은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면역억제제는 안되는게 말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01년부터 소장 이식을 임상적 치료법으로 인정해 의료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엄마가 이젠 너무 힘이 세졌어요. 정맥영양법으로 살아갈 때는 엄마가 때릴 힘도 없고 때린 적도 없었지요. 또 그 때는 모든 것을 엄마 입장에 맞춰주기도 했지요. 최근에는 내 입장을 세우기도 하는데, 그 때문에 엄마가 때린 적이 있었는데 무척 아팠어요.” 나씨는 경제적 곤경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건강이 회복된 게 무척 자랑스럽다는 눈치다. 이씨는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고생하는게 마음이 아프다”면서 “건강이 회복되면 봉사활동을 하고 싶었는데 몸이 거기까지는 따라주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