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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02 19:02 수정 : 2006.05.03 15:17

중학생 시절부터 오토바이 경주 선수로 활약하는 등 모험적인 일을 즐겨온 강재영(55)씨는 비행기를 직접 몰기 위해 6년 전에 초경량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병과친구하기■ / 당뇨 합병증 앓는 강재영씨

당뇨 합병증에 의한 족부궤양으로 오른발을 잘라낸 강재영(55)씨는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자신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했다.

“당뇨병에 대해 너무 무지했어요. 당뇨 증상이 처음 나타나고 10년이 지나도록 치료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객기였는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1986년, 그가 35살 때였다. 5년 동안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블랙 앤드 화이트’ 팀의 카레이서로 선수 생활을 한 지 1년 가량 흘렀을 즈음이었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1200㏄짜리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선물로 받았을 정도로 부유했던 집안이 몰락하자 성공해보겠다고 미국으로 건너 갔었다.

당뇨병 증상은 분명했다. 금방 피로해지고 한달 사이에 체중이 30㎏이나 빠졌다. 그때 한달간 매일 물을 큰 주전자로 하나 가득 먹는 대갈증과 자주 먹는 다갈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당뇨병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유도를 시작해 6단까지 땄을 정도로 운동으로 단련된 신체를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고교 시절부터 5년간 우리나라 최초의 오토바이 경주팀인 ‘번개팀’ 선수로 활동하는 등 모험심이 강하고 겁이 없는 성격도 당뇨병을 무시하는데 한몫 했다.

당시 오토바이 경기가 열린 효창운동장, 서울운동장, 지방의 공설운동장들은 트랙이 짧고 안전방어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고가 속출했고, 그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은 최근 10년 이내의 일 아닌가요? 당뇨는 부자들만 걸리는 난치병으로만 생각했어요. 당뇨약만 챙겨 먹었어도 오른발을 절단하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뇨 증상이 처음 나타나고 10년의 세월이 흐른 1996년이었다. 자동차 경주 초창기 카레이서로서 7년간의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모형항공기를 취급하는 ‘엘리트항공’과 오프로드 레저스포츠샵인 ‘레드울프’를 설립해 운영한 지 1~2년 되었을 때였다. 당시 엘리트항공의 고객이었던 한 의사가 그의 당뇨 증상을 알아차리고 치료를 권유해 비로소 병원 진료를 받고 당뇨약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당뇨 치료와 함께 과식을 자제하고 술을 적게 마셨다. 하지만 당뇨병 합병증 발생을 막지는 못했다. 2004년 2월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찰과상을 입어 감염된 지 3일만에 농양이 생겨 급속도로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당뇨성 족부궤양이 악화된 것이다. 결국 을지병원 족부정형외과 김재영 교수 집도로 발가락 5개에서 시작해, 발등, 그리고 무릎 아래 19㎝ 지점까지 3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잘라낼 수밖에 없었다.

발병 10년…무시무시한 반격, 오른발·절단치아 거의 빠져
몇번 자살했겠지만 낙천성이 약

당뇨로 인한 심각한 합병증은 2003년에도 있었다. 오토바이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오른쪽 눈이 뿌옇게 변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다. 당뇨성 망막증이었는데 다행히 병원에서 응급으로 레이저치료를 받고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당뇨는 치아 건강도 앗아갔다. 39살부터 45살까지 풍치와 치통이 극심했었다는 그는 현재 윗니쪽에는 자기 치아가 하나도 없어 틀니를 하고 있고, 아랫니쪽에는 앞쪽에 7개 정도 자기 치아가 남아 있으나 그중 하나는 기자와 인터뷰하기 며칠 전에 부러졌다고 했다.

그는 오른쪽 발을 절단했지만 왼쪽 다리도 무릎 밑으로 성치 않다. 피가 잘 안통해 감각이 없고 밤에 잘 때면 꼭 쥐가 나면서 진통이 오는데, 마치 자동차가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통증이 극심해 악 소리도 못내고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또 의족을 한 채 스스로 걸을 수는 있지만 왼쪽 다리의 통증이 심해 100m 이상 걷기가 힘든 형편이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환한 표정을 지을 정도로 낙천적이기도 하다. “날 보고 사람들이 어디가도 살 놈이라고 하지요. 천성적으로 낙천적이지 않았다면 벌써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름대로 괴롭긴 하지만 그냥 속으로 삭여버리고 말지요.”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 보면 오토바이 경주 선수, 카레이서, 고급 레저스포츠샵 운영자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부럽기조차 하지만, 어린 시절 집안이 너무 부유했었기 때문에 집안이 완벽하게 몰락했을 때의 충격은 낙천적인 성격이 아니었다면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뜻이다.

키가 174㎝인 그는 “군에서 제대한 27살 이후에 유도 운동을 그만두면서 체중이 불기 시작해 콜라와 햄버거를 즐겨먹은 미국 생활 당시에는 94㎏까지 나간 적이 있었다”면서 당뇨병 예방 차원에서라도 적게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할 것을 당부했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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