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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5.23 16:37 수정 : 2006.05.24 14:31

아내 간병을 하다 ‘종이접기 달인’이 되어 사회에 봉사하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박태부씨가 자신의 신장을 받은 아내 김순자씨와 함께 산본 새도시 자택 거실에서 자신이 만든 닥종이 인형을 배경으로 섰다.


■ 병과친구하기 ■ 신장 떼준 박태수·이식받은 김순자씨 부부 /

“아내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세상 물정을 잘 모르거든요. 하지만 신장이식수술 뒤에는 거의 하지 않아요. 신장 하나 떼주고 무슨 큰 일 했다고 유세를 부리는 것 같아서요”

박태부(63·경기 산본 신도시)씨는 수자원공사를 거쳐 경인운하㈜에서 명예퇴직을 한 바로 다음해인 지난 2003년 환갑을 일년 앞두고 아내 김순자(59)씨에게 왼쪽 신장을 기증했다. 그가 지금 아내에게 하는 잔소리는 ‘약(면역억제제) 잘 먹어라’는 말이 전부다.

“장기이식환자들 가운데 탈없이 오래오래 살아가는 분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면역억제제를 복용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더라구요”

약 복용시간을 지키라는 잔소리마저 안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김씨는 ‘남편이 정말 잔소리를 안 하냐’는 물음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적인 아내는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질문을 해야 비로소 말문을 열곤 했다.

이 부부는 결혼 35년만에 서로 신장을 주고받음으로써 다른 부부들이 경험하기 힘든 새로운 차원의 결혼생활을 3년째 하고 있다. 특히 남편이 아내한테 신장을 기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남편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장 기증을 꺼려 이혼하거나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신장을 기증한 첫 사례다. 반면 아내가 남편에게 신장을 기증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고 한다.

신장이식수술을 하고 난 뒤 이들 잉꼬부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아내는 일주일에 세 차례씩 받아야 했던 혈액투석을 더이상 하지 않게 됐고, 남편은 ‘종이접기의 달인’이 되어 병원, 복지관, 치매노인시설 등으로 여기저기 봉사활동을 다니느라 더 바빠졌다는 것이다.

김씨가 신장 이상을 알게 된 것은 1994년. 약국에서 살빼는 사서 먹다 몸이 붓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신장 기능이 떨어진 것으로 나와 그 때부터 신부전증 치료를 시작했다. 그때 체중은 58~59㎏ 정도로 비만도 아니었는데 이웃 주민의 말만 믿고 살빼는 약을 먹어 부작용을 겪은 것 같다고 했다.

“신장은 한번 나빠지면 회복이 안 된다고 해요. 아내의 경우 신부전증 치료를 꾸준히 했지만 신장 기능이 조금씩 더 악화되어 신장이식수술을 받기 전 만2년 동안 일주일에 세 차례씩 혈액투석을 해야 했지요. 아내는 시장에 다녀오면 쓰러지고, 계단은 두세 차례 쉬어가면서 올라가야 했어요.”

‘아내에 기증한 남편’ 드물어
간병하며 배운 종이접기로 봉사, 건강해진 아내도 이식환자 상담

박씨는 아내 김씨의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집을 팔아서라도 아내의 신장을 고쳐주겠다’는 각오로 신장이식수술을 추진했다.

하지만 뇌사자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 대기중인 환자가 그때만해도 2천명이나 된다는 얘기에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희망이 솟아났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여러 환자 가족들끼리 릴레이식으로 신장을 교환이식하는 수술이 성공한 것이다.

남편은 즉각 자신의 신장을 아내가 아닌 다른 환자에게 기증하기로 결심하고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그런 마음 탓인지 행운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아내에게 직접 신장을 떼어줘도 될 정도로 조직이 적합한 것으로 나온 것이다.

아내는 소변이 역류되는 증상이 있어 우선 제 기능을 상실한 양쪽 신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혈액투석으로 버티면서 기력을 회복한 뒤 신장이식수술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경과가 좋아 양쪽 신장을 떼어낸지 2개월만인 2003년 6월5일 아내는 남편의 신장을 이식받을 수 있었다.

“이식수술을 한 뒤 동네 약수터에 가서 물 떠오는 일을 아내에게 넘겨줬어요. 왕복 30분 가량 걸리는데, 아내가 요즘은 하루에도 두 번씩이나 약수물을 떠와요”

박씨는 흐믓한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봤다. 김씨는 “남편은 쾌활하고 가정적이에요. 직장 다닐 때는 일 끝나는대로 바로 퇴근해 동네 사람들이 ‘시계추’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라고 화답했다.

남편은 아내 병구완을 위해 병원을 자주 다니면서 다른 환자들에게 뭔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종이접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배운지 2년만에 지도사범 자격을 땄다. 60대 남성으로서는 처음이다. 닥종이 공예도 배우기 시작한 지 6개월 밖에 안됐지만 수준급이다.

남편은 요즘 소아암 환자들에게 종이접기 작품을 선물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차례씩 삼성서울병원을 찾는 등 여러 곳의 봉사활동을 준비하느라 매일 새벽 1~2시까지 종이접기를 한다. 전형적인 가정주부였던 아내도 남편과 함께 한달에 두 차례씩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가 이식수술 환자 및 그 가족들에게 상담을 해주고 있다.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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