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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06 18:46 수정 : 2006.06.07 16:16

지난달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암을 이겨낸 가족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부부의 암극복 스토리가 뮤지컬로 재현되고 있다. 앉은 채 뒷모습이 보이는 남녀가 대상을 수상한 부부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수 없는 애틋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사진 대한암협회 제공

■병과 친구하기■ ‘암극복 가족 수기’ 대상 김경호·손지혜씨 부부 /

“출산한 지 10일도 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항암치료를 받았어요. 그땐 제가 살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요. 갓 태어난 아기를 위해 가까운 친척집으로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혼 11년째인 손지혜(35·가명)씨는 다른 암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자신의 암 극복 스토리를 공개했지만, 둘째 아이를 입양시킨 사실을 밝히는 데 무척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남편 김경호(41·가명)씨와 함께 지난달 23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대한암협회가 주최한 ‘암을 이겨낸 가족 수기 공모전’ 시상식에 참석해 ‘아스트라제네카 암 희망상 대상’을 받았다.

“입양 보낸 둘째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고, 구김살 없이 잘 자라고 있어요. 그 아이가 입양 사실을 알면 안되겠기에 암극복 수기 공모전에 응모하면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지 말 것을 부탁했어요.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채 시상식에 참석한 것도 그 때문이죠.”

그는 6년 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뱃속의 아이를 그대로 둔 채 항암치료에 들어가자고 했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결국 분만촉진제를 이용해 조기출산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급성폐렴에 걸려 생사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출산 일주일 만에 회복되어 중환자실에서 일반 무균실로 옮긴 뒤 곧바로 첫 항암치료를 받았다. 이후 1년이 흐른 2000년 5월 15일 자가골수이식수술을 받기까지 6개월 이상 무균실에 입원한 채 모두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와 두 차례의 골수 채취를 하면서 생사의 고비를 여러 차례 더 넘어야 했다.

마지막 항암치료 때에는 고강도 항암제를 투약하는 가운데 고열이 발생해 항생제 4병을 동시에 맞고 정신이 혼미해져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로 거의 일주일을 보내기도 했다.


둘째 임신 8개월째 백혈병 진단
여러차례 고비 넘기며 사투
자가골수이식 5년만에 완치 판정

또 자신한테 적합한 골수를 가진 사람을 찾았으나 결혼을 앞두고 있어 골수기증이 어렵다는 말에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자가골수이식은 성공률이 40% 정도 밖에 안되지만 그대로 죽을 수는 없는 것. 남편은 자세한 사정을 숨긴 채 아내에게 100% 성공의 확신을 심어줬다. 하지만 자가골수이식을 한 뒤에도 어려움은 계속됐다.

“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의 면역체계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취약하다고 해요. 그래서 수술 뒤 1년간은 외출 때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했고, 늘 집안을 소독했어요.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놀이방에 다니던 첫째 아이를 맘껏 안아주고 씻겨주지도 못했다는 거예요. 바깥에서 돌아오면 아이 몸에도 소독약을 뿌려야 했으니까요. 음식도 끓인 것만 먹었어요. 자신의 골수를 이식했기 때문에 백혈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커 우울증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하지만 투병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지난해 5월 자가골수이식 수술을 받은 서울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암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이다. 골수이식을 한 뒤 만 5년이 지나도록 암이 재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이 완치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마구 흐르더라구요. 저도 힘들었지만 남편이 무척 고생했어요. 집안 청소, 아이 돌보기는 물론 제 병 관리까지 모든 것을 남편이 다 했어요. 제가 나은 것의 80%는 남편 덕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을 때부터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실의와 절망에 빠진 아내를 위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항상 밝은 얼굴로 농담도 하고 짓궂은 장난도 마다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아내의 칭찬에 “치료중이나 아니면 투병중일 때 모든 고통과 어려움은 온전히 환자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대신 아파 줄 수 없다”며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옆에서 함께 지내며 지켜본 것일 뿐 병을 이겨낸 것은 아내 자신”이라고 어려움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병과 싸운 아내 덕으로 돌렸다. 그는 아내의 경험을 들어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 환자 자신의 의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씨는 이어 “두번째 항암치료를 하고 퇴원했을 때, 서울 영등포 롯데백화점에 들러 가발을 사주자, ‘남들이 안 쳐다본다’고 좋아하며 내 팔짱을 꼭 끼던 아내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며 빙긋 웃었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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