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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0 16:50 수정 : 2006.06.21 15:14

■ 병과 친구하기 ■
후두암 이겨낸 박승응씨 /

“군대 가서 처음 담배를 배운 뒤 항상 입에 담배를 물고 살다시피 했어요. 제대하고 나서 농촌에서 농사 일을 했기 때문에 오염된 공기를 마신 것도 아닙니다. 후두암에 걸렸던 건 순전히 담배 때문이죠.”

칠순을 코앞에 둔 나이에 금연 및 식도발성법 강사로서 자원봉사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박승응(69)씨는 흡연 20여년만인 지난 1980년 말기 후두암 진단을 받았다. 후두암 진단이 늦었던 것은 그 자신 후두암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여러 병원에서도 기관지염으로 잘못 알고 소염제를 계속 처방했기 때문이다.

군복무를 마치고 경남 김해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1970년대 말께부터 감기에 자주 걸렸다. 담배 탓으로 여겨 감기약을 지어먹을 땐 담배를 끊어보기도 했지만 감기가 잘 낫지 않아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후두암 판정은 여러 병원을 다닌 뒤, 6개월만 이었다.

마침내 말기 후두암 판정을 내린 부산 한 병원에서는 암에 걸린 후두를 잘라내버리는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지만 자기 병원에서는 수술이 불가능하니 서울로 가서 수술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서울지역의 여러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원자력병원에서 암종양이 퍼져있는 후두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하기로 마음먹기는 쉽지 않았다. 후두 절제는 제 목소리를 잃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안 죽고 사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쪽으로 마음을 고쳐먹고 후두 절제 수술을 받았어요. 원래의 목소리는 잃었지만, 식도로 발성하는 방법을 열심히 배워 지금은 의사소통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어요.”


후두를 제거할 경우 목소리를 내는 방법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인공후두기를 이용해 기계음을 내는 것과 식도를 이용해 발성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는 배우기가 어려운 후자를 선택했다.

군대에서 배운 담배 ‘20년 꼴초’ 기관지염 오진해 말기에야 진단
수술로 농사 포기·철저한 채식, 금연·식도발성법 자원봉사 ‘보람’

식도 발성은 식도 쪽으로 공기를 조금 넣었다가 다시 트림하듯이 배출하면서 말소리를 내는 것으로 1년 가량 열심히 연습해야 큰 불편없이 구사할 수 있지만, 인공후두기에 비해 좀더 자연스럽고 외관상으로는 정상인과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인공후두기 발성은 반드시 인공후두기를 목에다 갖다 대고 해야 하므로 외관상으로도 정상인과 쉽게 구분되는 단점이 있다.

그는 수술 때문에 농업을 포기하고 탁구장, 당구장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 직업을 바꾸기도 했다. 후두를 절제하고 난 뒤에는 목에 뚫린 구멍을 통해 숨을 쉬어야 하기 때문에 외부공기에 극도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김해평야에서 트랙터, 경운기 등을 이용해 기계화영농을 하고 있었던 그는 영농기계에서 나오는 매연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수확기에 벼타작할 때 자욱하게 나는 먼지도 견디기 힘들었다.

“외부공기가 코나 입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폐로 들어가기 때문에 감염 우려가 높아 목가리개를 착용하는 등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해요. 또 추운 겨울에는 목티 또는 마후라로 목을 감싸주어 찬공기가 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줘야 합니다.”

후두 절제로 인한 불편은 뜨거운 음식과 육류를 먹지 못해 채식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등 식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지만 사회를 등지고 살 수는 없었다. 논밭을 처분한 돈으로 부산에 이어 고향 거제도에서 탁구장, 당구장 등을 운영하면서 1남2녀의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후두암 수술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삶의 의지를 상실한듯 자기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제가 고안해 만든 목가리개와 플라스틱 보호대를 무료로 나눠주는 일도 했지요. 일본산 목가리개는 길이가 너무 짧아서요.”

이렇게 적극적으로 살아온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는 수술을 받은지 27년이 흘렀지만 매우 건강했다. 그에게 후두 절제술을 실시한 원자력병원 이비인후과 심윤상 박사는 “굉장히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며 “수술 받은 뒤 병원에 올 때마다 병실을 돌면서 후배 후두암 환자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고 그를 기억했다.

지난해 자영업을 그만둔 그는 올들어 전업 자원봉사자로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거제시 보건소의 요청으로 지난 3월부터 초·중·고교를 돌며 금연을 홍보하고 있고, 삼성조선소에서도 금연 강연을 했다. 또 원자력병원에서는 지난 5월부터 일주일에 수, 목 이틀간 후두 절제 수술자들을 위해 식도발성법을 강의하고 있다.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사진 원자력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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