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많은 20대 중반에 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정상인보다도 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안명희씨가 집 거실에서 두 아이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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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전부 잘라낸 안명희씨 / “개복 수술을 모두 네 차례나 한 칼자국이 남아있는 제 배를 보고 남편이 농담 삼아 ‘조폭 마누라’라고 합니다” 주부 안명희(43·서울 관악구)씨는 17년 전인 20대 중반 무렵 위암에 걸려 절개 수술을 처음 받았다. 다행히 초기였으나 암의 위치가 위 상부였기 때문에 위장 전체를 잘라내야 했다. “요즘은 암이 대중적인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제가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암 수술을 받았을 때만해도 암은 희귀하고 죽을 병으로 통했어요.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척 중에 암으로 투병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저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충격 그 자체였어요” 20대 중반 수술뒤 17년째 건강
하루 다섯끼 조금씩 먹어
남매 키우며 방송대 공부까지 당시에는 암에 대한 인식이 일천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조차도 ‘죽을 병’으로 위장까지 송두리째 들어낸 딸이 결혼하는 것은 물론 출산에 성공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결혼한 뒤 두 아이를 제왕절개수술로 낳고 담낭절제수술까지 받는 등 추가로 세 차례의 개복수술을 이겨냈다. 위암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매운 아구찜을 먹다가 속이 너무나도 쓰렸던 사건이다. 고교를 나와 산업자원부(당시 상공부) 장관 비서실에서 8년째 근무하던 시절이었는데 음식을 먹으면 위가 아프고 소화가 잘 안되던 중 아구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병원 진료를 받아본 결과 초기 위암을 발견하게 됐던 것이다.
“아주 맵고 짜게 먹은 것도 아니고, 가족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위암에 걸렸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장관 비서실 일 자체가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불러 암까지 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암 수술 뒤에는 위장이 없어서 그런지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어야 했는데 (지금도 하루에 다섯 끼를 먹고 있음), 음식이 자꾸 목에서 걸려 잘 내려가지 않아 그 때마다 가족들이 등을 두들겨 줘야 했다. 위를 절개하고 소장과 식도를 연결한 부위가 좁아졌기 때문인데, 그 부위를 확대하는 치료를 받느라 목에서 피를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위암은 초기에 수술만 하면 완치할 수 있고, 지금 수술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주치의의 말을 믿고 수술 한 뒤 고작 한 달을 쉰 뒤 장관 비서실에 복귀한 것이다. “위장을 떼어냈기 때문에 앞으로는 수술 이전에 먹던 음식들도 먹지 못하고 김치도 백김치만 먹어야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퇴원할 때 주치의 선생님께서 아무 거나 다 먹어도 된다는 의외의 말씀을 했지요” 그래서 그는 지금까지도 민간요법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은 물론 영양제 하나도 먹지 않고 정말로 수술하기 전과 같이 여러가지 음식을 골고루 먹고 있다고 자신있게 밝혔다. 아주 맵고 자극적인 음식만 자제할 뿐이다. 그는 장관 비서실에서 2년을 더 근무한 뒤 퇴직해 신학대학을 다니다,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애를 낳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사들간 의견이 엇갈려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위암수술을 집도한 주치의의 ‘애를 낳아도 좋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어 첫 딸에 이어 둘째 아들까지 낳았다. 둘째 아들 때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임신 7개월 됐을 때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파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니 담낭에 담석이 가득 차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애를 가진 상태에서 담낭절제수술을 할 수 없어 중환자실에 일주일 입원한 끝에 간신히 염증을 가라 앉혔으나 출산할 때까지 세차례나 더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갔다. 결국 둘째 아들이 백일이 되었을 때 미루어 놓았던 담낭절제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위암 수술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덤핑증후군으로 가끔 나른해지고 팔이 후들후들 떨리는가 하면, 매월 한차례씩 철분을 보충해주는 주사를 맞는 것 이외에는 제가 위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생활하고 있어요” 신촌세브란스병원이 일년 전에 ‘위암환자와 가족을 위한 건강강좌’를 열면서 자신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행사 순서에 자신을 ‘초청환자 발표’로 소개한 것을 보고 인쇄가 잘못된 걸로 생각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10살, 7살짜리 두 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와중에도 이른바 ‘공주 생활’을 하고 있다. 공주란 방송대에 다니며 공부하는 주부를 가리킨다. 교회에서 주일에 유치부와 초등부 교사를 오랫동안 했다는 그는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지난 2003년에 방송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지금이 학기말 시험기간인데, 평균 80점 이상은 받아야 장학금을 받을 수 있어요. 인터뷰가 끝나는대로 시험공부를 해야 돼요”라며 서두르는 방송대 4학년생 ‘공주’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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