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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18 20:03 수정 : 2006.07.19 13:05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송진숙씨가 신촌세브란스병원 병상에서 밝은 표정으로 사진촬영에 응했다. 그는 뇌심부자극술로 뇌 속에 심어놓은 전극에 보내는 전류의 세기를 조절하기 위해 입원중이다.

물리학박사 받고 귀국한 지 3년뒤
30대 후반에 덜컥 불길한 증상
“처음엔 사형선고 같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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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째 파킨슨병 앓는 송진숙씨 /

“이 책은 제 이야기나 다름 없어요.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증상이 나의 증상과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니까요.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허청 정보기기 심사관으로 일해오다 최근 병가를 낸 송진숙(42)씨는 4년 전에 불치병의 하나인 파킨슨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지만 좌절하지 않고 파킨슨병 관련 외국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해낸 소감을 밝혔다.

화제의 번역서는 〈환자와 주치의가 함께 번역한 파킨슨병〉(지식의풍경 펴냄)으로 미국의 파킨슨병 전문의사 3명이 파킨슨병에 대해 알기 쉽게 공동집필한 영문서적이 원전이다. 미국 인터넷서점인 아마존을 검색해 찾아낸 서너 권의 파킨슨병 관련 책 가운데 대중서로 가장 적합한 것을 골랐다. 연세의대 세브란스병원 신경학과 손영호 교수가 주치의로서 번역을 도왔다.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2003년 가을께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제 파킨슨병 심포지엄’이다. 당시 심포지엄에 참석한 수많은 파킨슨병 환자와 보호자들을 보고 그들을 위해 뭔가 보람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파킨슨병은 당뇨와 같은 만성퇴행성 질환의 하납니다. 따라서 파킨슨병에 대해서 아는 자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파킨슨병 환자인 사람이 자신은 물론 같은 처지에 놓인 환자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파킨슨병에 대해 아는 것을 돕기 위해 번역서를 낸 셈이다. 낮에는 특허청 일을 해야 했던 그는 주로 새벽 1시에 일어나 밤을 새워가면서 번역하는 등 열과 성을 다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주치의 선생님이 처방한 용량을 초과해 약을 복용한 날도 있었고, 한글 워드 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불면증을 탓하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할 때가 많았어요.”

연세대 물리학과 81학번 출신인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에서 ‘고온 초전도체의 수치해석적 연구’를 주제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1997년 9월부터 특허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0년이었어요. 기운이 없고, 걷는 게 느려지고,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글씨를 점점 작게 쓰는 등의 증상들이 나타났지요. 동네병원에서 파킨슨병을 의심했지만 믿을 수 없었어요. 결국 대학병원에서 파킨슨병을 확진하고 난 뒤에야 파킨슨병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지요.”

파킨슨병의 70~80%는 손과 발, 머리 등 신체의 일부분을 떠는 진전증상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는 처음에는 진전증상이 없었다. 또 파킨슨병은 50대 이상에서 주로 발생하지만 그는 30대 후반에 불과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나 프로권투 선수로 명성을 날린 무하마드 알리 등이 파킨슨병 환자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그런 질병이 자신에게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내는 뇌 속의 흑색질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원인에 의해 파괴되어 나타난다. 흑색질 손상은 도파민 부족을 낳고 흑색질과 연결된 뇌의 기저핵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기저핵은 인체의 운동을 부드럽고 조화롭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 이에 따라 파킨슨병 치료는 부족해진 도파민을 보충해주거나 그 작용을 도와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2005년 6월에 파킨슨병 증상 개선 등을 겨냥해 뇌 속에 전기적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는 전극을 반영구적으로 심는 뇌심부자극술을 받았다. 이 수술을 받은 뒤에는 손과 팔, 머리, 몸체 등이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이상운동증이 없어졌다.

손영호 교수는 “파킨슨병 증상 개선을 위한 약들은 장기 복용시 2시간마다 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약효 지속시간이 짧아진다”며 “뇌심부자극술은 증상 개선 효과와 더불어 약 기운이 없을 때에도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은 환자들의 얼굴 근육의 움직임도 둔하게 하여 표정 없이 무뚝뚝하게 보이게 한다. 이런 얼굴을 이른바 ‘마스크 페이스’라고 하는데, 그의 얼굴 표정은 매우 밝았다. ‘나는 파킨슨병 환자’라고 대놓고 선전하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이 싫어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온 결과다.

“처음에는 마치 사형선고라도 받은 듯이 절망적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도 일을 할 수 있고, 번역서이기는 하지만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책까지 출간하게 되어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는 좋은 물리학 책을 번역하고 싶어요.”

제2, 제3의 번역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는 그의 발음은 파킨슨병의 영향으로 어눌했지만, 중학교 때 3년 내내 과학경시대회에 출전하는 경험을 통해 물리학에 매력을 느끼게 된 여성 과학도의 순수한 열정이 배어 있었다.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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