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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5 18:28 수정 : 2006.07.26 14:57

■ 병과 친구하기 ■
희귀 뼈암 후유증 앓는 임호진씨 /

“진통제 없이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기아차 광주공장 품질관리2부에서 일하고 있는 임호진(31)씨는 매일 진통제를 먹는 것도 부족해 통증이 심해지는 밤에는 한달 평균 40차례 가량 통증을 강력히 억제하는 주사제를 맞기 위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고 있다.

“직장에서 일할 때는 복용 중인 진통제로 견딜 만해요. 하지만 퇴근해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려고 하면 칼로 찌르는 듯한 ‘환상통’이 갑자기 생겨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곤 해요. 궂은날이나 요즘과 같은 장마철에는 더욱 심해지죠.”

환상통이란 전쟁, 사고 또는 질병에 의해 신체에서 잘려나가거나 수술로 절단해버려 없는 부위에서 나타나는 통증을 말한다.

그는 2001년 초 뼈에 생기는 암인 골육종 진단을 받고 투병한 끝에 암 완치의 기준인 5년간 재발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2005년 3월 맨살이 곪아터지기를 되풀이하면서 통증이 심했던 오른쪽 허벅지 아래쪽을 절단하는 수술을 선택해야 했다. 이에 따라 오른쪽 무릎을 포함해 발 끝까지는 의족을 착용하고 있는데, 그 없는 부위에서 희귀한 통증의 하나인 ‘환상통’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환상통을 꾀병으로 생각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심지어 환상통을 치료하기는커녕 믿어주는 병원도 없었으니까요. 저와 같이 환상통을 앓는 동갑내기 여자가 있었는데, 가족과 의료진 등 주위에서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어 자살한 일도 있었어요.”


5년전 무릎 골육종 제거 수술, 작년 염증 너무 심해 오른쪽 절단
실체 없는 극심한 통증과 싸우며, 특허기술 발명·불우아동 후원도

최근에는 다행스럽게도 환상통과 같은 희귀통증 치료에 적극적인 강윤규 고대의대 안암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를 알게 되어 매주 한 차례씩 서울에 올라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강 교수를 도와 환상통 치료방법을 찾는 일도 하고 있다. 노란색 메모지를 항상 갖고 다니면서 ‘통증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메모지 뭉치에는 “오른쪽 발목 아래 뜨거움. 그리고 세네번째 발가락까지 순간적으로 찌리릿, 1분 이상. 대퇴부 쏴한 느낌과 고관절 쪽 저림” 등과 같은 통증 발생 경위에 대한 메모가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변화무쌍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환상통의 실제 상황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는 노란색 메모지들은 골육종을 이겨낸 것처럼 환상통도 극복하고 말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담고 있는 듯했다.

“2001년 1월께 무릎이 굉장히 아파 병원에 가보니 골육종이란 희귀암 진단이 나왔어요. 절망도 원망도 많이 했지만 간절히 기도했어요. 할 일도 많고 꿈도 많은데 암을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던 어느날 폭풍우가 몰아치는데 승용차가 다가와 집까지 바래다주는 꿈을 꾼 것을 계기로 희망을 갖게 됐어요.”

6개월 남짓 걸린 항암제 치료를 견뎌낸 그는 2001년 6월께 오른쪽 무릎에서 뼈암 덩어리를 제거하고 인공관절을 해넣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인공관절 부위에서 계속 염증이 생겨 한달에 한 차례씩 6시간 걸리는 수술을 여섯 차례나 받은 뒤에야 간신히 염증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었다.

마침내 2002년 10월에 회사에 복귀했지만, 오른쪽 허벅지 아래쪽은 계속 이유없이 염증이 생기고 통증도 심해졌다.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그는 자신의 블로그(blog.daum.net/hjhjkhkh) 2005년 2월28일치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나의 소중한 다리 하나를 이제 잘라야 할 때입니다. 이 다리를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 결국 자르는 것이 내게 더 좋다는 마지막 기로에 서서 … 헤헤 … 웃어 봅니다. 울어서 낫는다면 1년이고 10년이고 쉬지 않고 울 자신이 있는데 …”

그는 의족을 한 채 2005년 6월에 다시 회사에 복귀했다. 회사 동료의 도움으로 계단도 오르내리는 등 자동차 제조 현장을 부지런히 다니면서 품질관리에 힘썼다. 그 결과 자동차의 진동소음을 획기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줄일 수 있는 ‘고분자 제품을 이용한 자동차 판넬의 소음·진동 성능 향상’ 방안이 떠올랐다. 이 방안은 현재 특허 출원 중이고, 회사 안에서는 실험차 3대를 배정받는 등 실제 제조공정에 활용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4년에 기아차 광주공장에 취업했다. 골육종 항암치료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회사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의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때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많은 도움을 준 가족, 회사 동료, 의료진 등에게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회사에 복귀하기에 앞서 광주 남구청에 전화를 걸어 불우아동을 돕고 싶다고 했어요. 구청 쪽에서는 제가 총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심도 했지만 결국 한 사회복지시설을 소개해줬어요. 그곳에서 가정파탄 등으로 부모 곁에서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 4명과 인연을 맺어 집에 데려와 같이 놀아주는 등 작은 정성이나마 후원을 하고 있어요.”

광주/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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