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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01 17:06 수정 : 2006.08.01 17:55

■ 병과 친구하기 ■
소아당뇨 21년째 인슐린 맞는 서현주씨/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아빠 심부름을 가다 옆 동네 큰 길에서 쓰러져 정신을 잃었지요. 다행히 엄마 친구가 발견해 집에 알려 병원에 가게 됐는데, 진료 결과 소아당뇨 때문에 생긴 저혈당 쇼크로 쓰러진 것으로 판명됐어요.”

부산에서 살고 있는 서현주(31)씨는 소아당뇨 환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21년째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지만 오랫동안 아파온 사람이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게 밝은 표정으로 자신의 병력을 털어 놓았다.

소아당뇨는 인체의 여러 장기 가운데 혈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췌장이 유전자 등 선천적 요인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질병으로 제1형 당뇨라고 한다. 이와 달리 비만, 고지혈증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해 생긴 당뇨를 제2형 당뇨라고 한다.

그는 소아당뇨로 지금까지 큰 위기를 두 차례 겪었다. 첫 위기는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에 들이닥쳤다.

당시 그는 어리기도 했지만, 가족조차도 당뇨가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몰랐다. 인슐린 주사만 꼬박꼬박 맞으면 되는 병으로만 안 것이다. 초등학교 때는 매일 아침 학교 가기 전에 동네병원에 들러 인슐린 주사를 맞았고,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학교수업 때문에 매일 병원에 들를 수 없게 되자, 인슐린을 주사하는 방법을 배워 집에서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그러나, 자가혈당측정을 통한 혈당 관리와 음식 조절과 같은 일상적인 당뇨관리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결국 고교 1학년말께 당뇨 합병증이 다리의 신경 계통으로 찾아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할 정도로 심한 통증이 생겼다.


다리신경 이상 이어 신부전증, 엄마의 정성으로 다시 일어서…
보험영업 하며 췌장·신장 이식 투석은 안해도 되니 감사할 뿐…

“다리가 너무 아파 고교 2학년 때는 학교도 거의 못가고 침대에서 누워 생활해야 했어요. 음식 냄새도 맡기 싫어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요. 그러자 혈액순환이 잘 안된 다리는 점점 말라 꼬챙이 처럼 말라갔어요. 죽는 날만 기다렸는데, 엄마가 절 살려냈어요. 제 침대 곁에 의자를 갖다 놓고 24시간 내내 간병하는 일을 1년간 계속 했으니까요. 길어야 고작 10분 가량 자고 통증을 못이겨 깨어나면 엄마는 곧바로 다리를 주무르고 흔들어 주었어요. 마침내 다리의 혈액순환이 잘 되기 시작해 고교 3학년 때는 혼자서도 학교에 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어요.”

두번째 위기는 1999년말께 시작됐다. 부산예술전문대를 1997년에 졸업한 뒤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하던 때였는데, 피곤하고 몸이 붓기 시작했고 급기야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응급상황이 발생했다. 고교 2학년 때부터는 인슐린 주사를 하루에 두 차례씩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당뇨 합병증의 하나인 신부전증에 걸려 이틀에 한 차례씩 인공투석을 시작한 것이다.

“인공투석을 받은 날에는 하루종일 힘이 없어 집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학습지 방문교사 일은 당연히 중단했지요. 하지만 집에만 있으니 나태해져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02년에 신장과 췌장 동시이식수술을 한다는 서울의 한림대 강동성심병원을 찾아가 이식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본격적으로 할 일을 찾아 나섰어요.”

그는 이틀에 한 차례씩 인공투석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비춰 보험 상품을 파는 일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하고 2003년 5월에 삼성화재 수림대리점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을 시작했다. 명색은 보험대리점 대표이지만 직원은 하나도 없는 1인 사업자로서 하는 일은 보험설계사와 똑같다. 다만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이틀에 한 차례씩 투석하는 시간을 피해 편한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투석하는 날을 제외하고 일주일에 사흘은 부지런히 밖으로 돌아니고 있어요. 보험 상품을 팔려면 될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하니까요.”

천성이 낙천적이어서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들로부터 ‘아픈 아인데도 아픈 아이 같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다는 그는 항상 웃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재미있고 시원시원하게 해 고객은 물론 같은 사무실을 쓰는 삼성화재 대리점업주들까지도 자신이 투석환자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2월 강동성심병원에서 신장과 췌장을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회복하느라 3개월간 사무실을 비우는 바람에 일부 대리점업주들이 자신의 병을 알게 됐을 뿐이다.

동화 속의 ‘빨간머리 앤’처럼 주근깨 있는 얼굴에 적극적인 성격까지 닮은 듯한 그는 이식받은 두 가지 장기중 췌장은 염증 때문에 제거할 수밖에 없어 인슐린 주사는 계속 맞고 있지만 신장을 이식받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틀에 한번씩 해온 신장 투석을 하지 않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제는 보험 일을 하는데 시간이 남아돌 정도예요. 그리고 저와 같은 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밝고 좋은 생각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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