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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5 17:47 수정 : 2006.08.16 14:29

■ 병과 친구하기 ■
‘만성신부전’ 이한권 자연체험학교 실장 /

숲해설가들의 모임인 자연체험학교의 이한권(55) 연구실장은 20년 전 아버지로부터 이식받은 신장을 10년 만에 떼어내고 혈액투석을 다시 시작하는 등 지금껏 크고 작은 수술을 26차례나 받았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다.

“30대 초반에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은 뒤, 지금까지 산부인과 빼고는 모든 진료과목을 섭렵했지요. 그동안 위기도 많았지만 10여 년 전에 등산을 시작하면서부터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어요.”

천성이 일벌레였던 그는 직장에서 한창 잘나가던 시절인 1984년 말께 중증의 만성신부전 진단을 받았다. 다음해 초부터 곧바로 복막투석에 들어갈 정도로 신장이 기능을 거의 모두 잃어버렸지만 그는 그때까지 신장에서 심각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아버지는 장성한 아들이 갑자기 복막투석으로 목숨을 연명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복막투석을 시작한 지 1년 남짓 지났을 때인 86년 4월, 환갑을 6개월 앞두고 자신의 신장을 아들에게 기증했다.

30대에 아버지 신장 이식했으나 10년만에 악화 다시 떼어내…
날마다 등산하다 숲해설가로, “남북 자연생태지도 만들고싶다”

“아버지 신장을 이식받고 건강이 너무 좋아져 다시 직장에 복귀해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하지만 90년 가을께 갑자기 뇌막염에 걸려 쓰러진 뒤 3일 만에 겨우 의식을 회복하고 4개월 가량 입원치료를 받았어요. 기적 같은 일이었죠. 장기를 이식받으면 면역 억제제 복용 때문에 면역력이 떨어져 있게 마련인데, 뇌막염에 걸리고도 큰 후유증 없이 정상생활로 돌아가자, 의료진들도 매우 놀랐을 정도니까요.”

뇌막염을 이겨낸 그는 92년 서울 광장동으로 이사하면서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맞게 된다. 집에서 가까운 아차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고구려 산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아차산은 중간중간 벤치에서 쉬어가면서 오를 수 있도록 등산로를 잘 꾸며 놓아 노약자들이 등산하기에 좋은 산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아차산을 올랐어요. 아침에 일어나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겨울에는 아이젠을 준비해 무조건 산으로 갔지요. 처음에는 조금만 올라가도 힘이 들어 벤치가 나오면 쉬었다 조금 더 올라가곤 했어요. 정상을 밟기까지는 1년 정도 걸렸으니까요. 산을 오르다 보니 건강도 나아지고 마음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하지만 95년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건강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아버지가 주신 신장에 문제가 생겼다.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체중이 60㎏대에서 47㎏으로 확 줄었고, 누가 부축해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소진됐다. 잠이 안 와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우울증에 변비 등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결국 신장 절제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1년 동안 이틀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건국대병원을 찾아가 혈액투석을 하고 있다.

아버지 신장을 지켜내지 못한 상실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했지만, 아차산 오르는 일을 계속하면서 산에 자라는 온갖 나무와 풀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98년부터 숲해설가협회와 숲연구소 회원들이 자원봉사로 서울 인근 휴양림과 서울시내 공원 등지에서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숲해설 모임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요. 일요일마다 홍릉에서 열리는 숲해설 모임에는 단골로 참석했어요. 숲해설이 재미있어 배우고 싶었어요. 2002년부터 환경대안협회, 산림과학원, 양재천환경지킴이 등에서 주최하는 숲해설 전문강좌를 들었죠. 그러다 보니 듣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내 그는 2003년 숲해설가 50여명과 뜻을 모아 자연체험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지난 7월 수원국유림사무소와 ‘국민의 숲 참여의 숲’ 협약식을 체결하고, 지난 14일부터는 닷새 일정으로 서울 송파구청과 협조해 송파구 오금공원에서 어린이 대상 무료 숲해설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혈액투석을 시작한 뒤부터는 과거에 비해 큰 병을 앓지는 않았지만 잔병치레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그때마다 이겨냈다. 2000년에는 갑자기 오른쪽 다리 감각이 둔해지고 발목 아래쪽이 잘 움직이지 않는 등 중풍 증상이 나타나 입원하는가 하면, 2005년에는 협심증으로 심장의 관상동맥을 넓혀주는 스텐트 시술을 받기도 했지만 다시 일어나 산과 숲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무가 사람보다 더 진화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아요.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사는 데 지장이 없고, 죽는 날까지 계속 자라납니다. 또 사람은 살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기도 하지만 나무는 욕심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필요한 것 이외에는 다 흘려보내니까요.”

나름의 자연관을 세울 정도로 숲에 매료된 그는 혼자 살기 때문에 자식도 없고 벌어놓은 돈은 물론 채권·채무 관계도 없지만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추사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남겼듯, 자신은 북한을 포함해 우리나라 전역의 자연생태지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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