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6.08.22 18:16 수정 : 2006.08.23 14:28

■ 병과 친구하기 ■
방광암 극복한 이홍섭씨

“외환위기 때 명예퇴직했지만 스트레스가 크지는 않았어요. 정년퇴직을 1년여 정도 앞둔 때였고, 아이들도 키울 만큼 다 키웠기 때문이죠. 사실 이제는 좀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 편하게 지냈는데 방광암 선고를 받고 처음에는 절망했어요.”

이홍섭(61)씨는 제일은행(현 SC제일은행)을 명퇴한 지 4년 만인 2002년 11월 말께 아무런 통증도 없었지만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아갔다가 ‘방광암이 틀림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절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털털하고 외향적인 성격인 그는 ‘하필이면 내가 왜 암이 걸렸을까’라고 비관하기보다는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은 빨리 인정하면 할수록 좋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했다.

“의료진에게 ‘생명에 지장이 있냐’고 물었더니, ‘생활이 불편할 뿐’이라고 해 그 정도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암이 많이 퍼져 있어 방광은 제거해야 하지만 생명과는 상관없다고 하기에 생활의 불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요.”

방광암은 방광의 내부 점막에만 국한된 초기의 ‘표재성 암’일 경우에는 방광 안에 내시경을 넣어 관찰하면서 점막에 있는 암종양을 떼어내는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 또 방광암이 더 진행되었다고 하더라도 근육층에만 암세포가 전이된 상태(침윤성 암)에서는 방광을 통째로 들어내는 수술을 하면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다만 방광이 제거된 상태에서는 소변이 고일 곳이 없게 되므로 대체 방광을 만들어줘야 한다.

방광암을 진단한 병원의 의료진은 그에게 침윤성 방광암이기 때문에 방광을 제거한 뒤 복부로 오줌관을 내어 외부의 소변백과 연결하는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항상 소변백을 차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변백을 차면 사우나를 할 수 없게 될까봐 걱정했어요. 암환자에게 사치스런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사우나이기 때문이죠. 결국 소변백을 차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찾았어요.”

소장을 70㎝ 가량 잘라낸 뒤 그것을 이용해 방광 모양으로 만든 뒤 남아있는 요도와 연결해주는 방광대치술을 받으면 소변백을 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10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난도가 높은 이 수술을 받기 위해 한림대의료원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겼다.

4시간마다 소변눠야 해 적응훈련 “생활 조금 불편할 뿐” 마음정리
30년간 하루 한갑 흡연 원인 “통증 없는 혈뇨 꼭 검진하세요”

“방광대치술을 받고 3개월 만에 퇴원했어요. 소장으로 만든 방광을 이용해 소변을 보는 방법을 배웠지만 집에서 능숙하게 소변을 보기까지는 쉽지 않았어요. ‘소장 방광’의 용량은 500㏄ 정도이기 때문에 3~4시간마다 소변을 누어야 해요. 잠을 제대로 잘 수도 없고 나다니는 것도 불편했지요.”

퇴원 후 자명종을 갖다놓고 3시간마다 종이 울리도록 한 뒤 낮밤을 불문하고 자명종이 울릴 때마다 소변을 보는 노력을 1년6개월간 기울였다. 소장 방광은 신축성이 원래의 방광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3~4시간마다 소변을 보지 않으면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해 신장을 망가뜨린다. 반면에 정상인들은 소변이 방광에 아무리 가득 차도 신장으로 역류하지 못하도록 신체기능이 작동한다.

직장에 다닐 때 건강보험증을 사용하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 하나는 자신했다는 그는 흡연 때문에 방광암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군대에서 담배를 배운 뒤 방광암 진단을 받고 끊기까지 30여년간 하루에 한 갑 이상 흡연한 것 이외에는 건강에 크게 해로운 생활습관은 없었다는 것이다. 술도 즐기지 않아 한번에 맥주 1~2잔 마셨을 뿐이었다.

강남성심병원 비뇨기과 이영구 교수는 “남성의 발병률이 여성에 비해 3배 가량 많은 방광암은 폐암과 함께 주로 흡연 때문에 생기는 대표적인 암”이라며 “통증 없는 혈뇨가 특징이기 때문에 40대 이상 남성에서 혈뇨가 나오면 비뇨기과의 전문 검진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방광대치술은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술이지만 방광 밖으로 암 전이가 없는 경우에만 시술할 수 있다”며 “화공약품공장이나 염료공장, 고무공장, 직물공장 등에 장기간 종사하는 사람, 미용사, 트럭운전기사, 페인트공 등은 방광암 발병률이 높으므로 정기적으로 소변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했다.

이씨는 방광암으로 판명되기 1년6개월 전부터 소변이 잘 안 나오고 깨끗하지 않은 것 같아 병원 진료를 받아본 결과 요도를 감싸고 있는 전립선이 비대해지는 질환이라는 진단이 나와 전립선비대증 치료제를 계속 복용했다. 방광암 진단 6개월 전에 혈뇨가 한번 비친 적이 있었으나 요로결석을 의심했을 뿐이었다. 대부분의 방광암을 진단해낼 수 있는 방광내시경검사는 물론 소변에 암세포가 떨어져나와 있는지를 알아보는 소변세포검사도 하지 않은 것이다.

“방광암 진단은 늦었지만, 방광대치술을 받고 4년이 흐른 요즘은 ‘소장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면 소변이 마려운 것 같은 느낌이 올 정도가 됐어요. 물론 3~4시간마다 소변을 봐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하지만 사우나도 할 수 있고, 등산 등 운동은 물론 해외여행도 문제없습니다.”

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병과 친구하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