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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9.19 21:08 수정 : 2006.09.19 21:08

전이 판정에 두아들 결혼 서둘러
손녀 탄생으로 투병의지 ‘활활’
6년만에 완치…환갑맞춰 책 준비
마음평정 찾는 이완요법 생활화

[병과 친구하기] 유방암 이어 폐암 이겨낸 김찬숙씨

“손녀딸이 저를 살렸어요. 암이 재발했을 때 죽음을 준비했지요. 하지만 서둘러 결혼시킨 둘째아들네가 낳은 딸을 처음 본 순간 기분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새 생명이 제 가슴 속에서 용솟음치는 것 같았지요. 그런 느낌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유방암이 폐로 전이되어 3차례나 죽을 고비를 겪은 김찬숙(57)씨는 자신을 할머니로 만든 첫 손녀딸 얘기를 하면서 나이를 의식하기는커녕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행복감에 빠져들었다. 손녀딸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쁨이고 생명인 셈이다.

그는 1990년께부터 오른쪽 유방에서 멍울 같은 게 만져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7~8년을 그냥 흘려보냈다. 암에 대해 더욱더 무지했던 것은 97년 6월 오른쪽 유방에서 지름 1.7㎝짜리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도 건강을 자신한 나머지 암이 재발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는 데 있다.

“유방암 수술을 받은 지 2년4개월 만인 99년 11월 폐에서 암이 발견됐어요. 재발하고 전이된 암은 치료가 어렵다고 하잖아요.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4주에 한 사이클씩 6차례의 항암제 치료와 7주간에 걸친 방사선 치료를 견뎌내면서 희망을 키우기도 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은 여전했지요.”

당시 그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에 착수했다고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죽기 전에 두 아들을 장가보내는 것이었다. 다행히 두 아들도 호응했다. 결혼 순서는 둘째아들이 먼저였다. 두 달 뒤에는 큰아들도 결혼했다.

두 결혼은 모두 2000년 상반기에 이뤄졌다. 당시 그는 항암제 부작용의 하나인 탈모 때문에 머리털이 빠진 상태였지만 가발로 가린 채, 두 아들의 결혼식을 위해 반지와 패물을 맞추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 등 엄마 노릇을 억척스럽게 다해냈다.

둘째아들이 결혼을 먼저 한 만큼 아이도 먼저 낳았다. 2000년 말께 첫 손녀를 할머니 품에 안겨준 것이다. 비로소 할머니가 된 그는 일찍 태어난 첫 손녀딸이 너무 귀엽고 고마워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손녀를 위해 10년짜리 보험을 들어줬다. 보험납입기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10년은 더 살아야 한다는 각오로 삶의 의지에 불을 지핀 것이다. 환자였기 때문에 손녀를 키워주지는 못했지만 거의 매일 손녀를 보러 갔다. 요즘도 손녀가 도서관에 갈 때면 손수 자가용 운전을 해 데려다 주는 등 일주일에 세 차례 이상 손녀를 만나고 있다. 손녀 생일과 어린이날을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다. 장가간 두 아들이 모두 수원시 권선구에서 그의 집과 5분 거리 안에서 살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크나큰 행복이다.

“암에 걸린 것이 결코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죽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지요. 암환자들은 자기 삶을 되돌아볼 수도 있고, 죽음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까요.”

폐로 전이된 암 치료가 끝난 뒤에도 암과의 투병은 계속됐다. 2001년 10월에는 폐에 있는 암이 활동을 재개했다는 진단이 나와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건강이 회복된 그는 사업을 시작했다가 3개월 만인 2003년 말께 중단하는 과정에서 다시 건강을 잃었다. 기침이 많이 나오는데다 늑막에 물이 고여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결국 2004년 2월 물이 차 있는 늑막을 포함해 오른쪽 폐 하엽을 절제하는 수술에 들어갔으나 암이 발견되어 다시 항암제 치료를 3주에 한 사이클씩 6차례 받았다.

암투병이 쉽지는 않았지만 손녀의 해맑은 얼굴을 생각하면 생명의 힘이 솟아났다. 마침내 지난해 펫시티(양전자방출 단층촬영)를 한 결과 암세포가 없어져 폐가 깨끗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그는 암투병 과정에서 손녀 이외에도 아주대병원 치료방사선과 전미선 교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전 교수가 유방암 환자들을 돕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이완요법팀과 국선도팀에 매주 2~3차례씩 참여해 마음의 평정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한차례 하는 데 21~22분 걸리는 이완요법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저녁에 자기 전 하루에 두 차례 이상 할 정도로 생활화했다.

이완요법은 마음이 편안하다고 ‘자기 암시’를 주는 것으로 보통 6단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는 한 단계를 더 추가해 7단계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한 내용은 방사선 항암치료를 많이 받아 약해진 폐를 겨냥해 ‘나의 폐는 건강하고 편안하다’는 말을 5~6차례 되풀이하는 것이다.

“4년 뒤에는 환갑이자 암이 재발한 지 10년이 되는데, 그때를 기념해 책을 한 권 쓰고 싶어요. 책 제목도 ‘손녀로부터 받은 엔도르핀, 전이로부터 10년’이라고 미리 정해 놓았지요.” 그의 마음은 언제나 손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원/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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