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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17 18:35 수정 : 2006.10.17 18:35

20대 중반부터 16년째 인고의 투병, 초기 ‘좌골신경통’ 오진해 악화
통증 견디며 두 아이 낳고 석사도… 산책할 수 있는 한 수술 안할 터

■ 병과 친구하기 ■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 앓는 이은영씨

“특별한 약을 먹은 것도 아니고, 민간요법을 쓴 것도 아니지만,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 발병한 지 16년이 지나도록 인공관절 수술을 미루고 있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문제는 없어요. 너무 아파 꼼짝하기 힘들 때에도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신념으로 몸을 계속 움직여왔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전업 주부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은영(39)씨는 대학을 갓 졸업한 1991년 말께 갑자기 오른쪽 다리 고관절 부위에서 송곳으로 찌르는 것보다 더 아플까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좌골신경통’으로 오진을 하는 바람에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해를 넘긴 뒤 다른 병원에서 최종적으로 받은 진단은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었다. 고관절에서 골반을 받쳐주고 있는 대퇴골두가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망가지는 질환에 걸린 것이다. 첫 병원에서 제대로 진단을 했다면 인공관절 수술 이외의 처지로도 치료가 가능했다는 게 둘째 병원의 의학적 소견이었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쪼그려 앉기가 불가능했고, 두 발을 벌리고 서서 거울을 보면 다리 사이로 만들어지는 삼각형이 비대칭으로 보였어요. 병원에서는 인공관절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통증을 참고 견뎠어요.”

위기는 94년에 다시 닥쳤다. 결혼생활 1년 만에 왼쪽 다리에서도 같은 증세가 발병한 것이다. 이번에는 초기 진단 덕분에 고려대 구로병원 정형외과 김성근 교수팀의 집도로 인공관절 수술을 하기 전에 할 수 있는 ‘감압수술’을 받았다. 대퇴골두에 구멍을 내어 혈액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수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감압수술을 받고 두 달 남짓 식물인간처럼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어요. 감내하기 힘들었지만 잘못 움직이면 골절이 될 수 있다고 해 정말 조심하며 지냈어요.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왼쪽 다리는 거의 정상 기능을 회복했어요.”


오른쪽 다리의 불편함은 여전했지만 96년에는 첫아이를 낳는 기쁨을 누렸다. 자연분만을 고집했지만 불편한 다리 때문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태아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머리를 질 입구 쪽으로 향한 채 자세를 잡았지만 그 다음 단계를 진행할 수 없어 제왕절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첫아이를 키우면서 대학원에 진학해 사회복지 전공을 했어요. 무혈성 괴사증으로 오른쪽 다리를 약간 절게 된 뒤부터 ‘장애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공부는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병이 아니었다면 놓치고 지나갔을 소중한 것들을 장애인 복지 문제를 공부하면서 많이 알게 되었어요.”

하지만 공부의 기쁨을 시샘하듯, 최대 위기가 2000년에 찾아와 2002년까지 지속됐다. 둘째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극심한 다리 통증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 주위에서는 아이를 포기하라는 권유가 빗발쳤다. 살아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임신 초기부터 이렇게 힘이 든데 배가 불러오면 어떤 상황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우려였지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닌 끝에 2001년 4월 둘째를 출산했다.

“둘째를 낳고 난 뒤 너무 힘들었어요. 다리를 질질 끌며 다니면서도 애 백일상까지 차려주는 억척스러움으로 버텨봤지만, 모든 것이 짜증스러웠고 사는 게 싫었어요. 둘째아이까지 얻었다는 기쁨도 사라졌어요. 두 아이가 평생 돌봐야 할 책임 덩어리로 느껴지기까지 했으니까요. 마침내 인공관절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어요. 수술 시기는 2002년 4월 둘째아이 돌잔치를 치르고 난 직후로 잡았지요.”

그는 인공관절 수술을 미룬 이유 가운데 하나로 생명체가 갖고 있는 자연치유력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다고 밝혔다. 단 1%라도 회복될 여지가 있는데, 골두를 잘라내면 자연치유될 가능성마저 아예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또 나이가 젊은데 벌써부터 인공관절 수술을 하면 죽기 전까지 도대체 재수술을 몇 차례나 받아야 할지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첫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둘째아이 돌잔치를 치르고 난 뒤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로 마음을 정하고 이상하게 다리 통증이 완화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의 통증이라면 수술까지 하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참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다시 오면 인공관절 수술을 받자. 그때 해도 늦지 않아”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날짜까지 잡은 인공관절 수술을 다시 미룬 것이다.

“지금도 쪼그리고 앉기 힘들고, 양반다리를 한 상태로 오래 있지 못하며, 겉보기에 약간 불편한 모습으로 걷고 있지만 괜찮아요. 이 좋은 가을날 등산화를 신고 가벼운 산행을 할 수도 있고, 제 곁에는 내 인고의 결실인 두 아들과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까요.”

춘천/글·사진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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