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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24 19:13 수정 : 2006.10.24 19:18

시골 마을에 살면서 채식 위주의 식단과 운동으로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음혜철씨와 자연주의 식단으로 음씨의 병구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아내 이단원씨가 텃밭에서 기르고 있는 김장용 배추를 돌보고 있다.

항암치료 6개월 만에 중단, 자연에 몸 맡겨 채식하고 운동
운명 받아들이자 맘 편안해져 “아내에게 정말 고마워요”

■ 병과 친구하기 ■ 췌장암 투병중인 음혜철씨 /

“지난 6월 병원에서 시티(CT) 촬영을 했는데 암세포가 줄어들었다고 해요.”

경기도 양평에 사는 음혜철(59)씨는 요즈음 건강에 대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마음 한 켠에는 머지않아 암을 완전히 이길 수 있겠다는 희망이 부쩍부쩍 자라고 있다. 병수발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아내 이단원(55)씨의 고생도 머지않아 끝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음씨는 지난해 8월15일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어지럼증이 있어서 이상하다 생각했다. 화장실에 갔더니 오줌 색깔이 핏빛이었다. 가족은 눈동자가 너무 노랗다며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황달이 온 것이었다.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여러 가지 검사를 한 뒤 정밀 진단이 필요하다며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사 앞에서 큰소리를 쳤지요. 지금까지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사람인데 무슨 병이 있다는 거냐.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했죠.”

불안감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다음날 입원한 뒤 정밀 검사를 받았다. 췌장암. 믿을 수가 없었다. 의사는 많이 진행이 되긴 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살 가능성은 있냐는 물음에 5%의 가능성이라도 믿고 수술을 하잔다. 다른 의사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수술을 하면 살 가능성이 있냐고. 수술을 한 환자 가운데 5년째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는 말에 그는 수술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하지만 공무원인 처남이 여기저기 알아봤다며 췌장암은 건드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오히려 낫다는 말을 전해왔고, 가족들도 반대했다. 수술 대신 자연요법으로 치료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불안했지만 가족들 말을 따르기로 하고 8월 말에 퇴원했다.

특별히 심하게 아픈 곳은 없었지만 마음은 지옥 같았다. 너무 화가 났다. 왜 내게 이런 병이 온 것일까? 누가 남산에서 돌을 던졌는데 그 많은 서울 시민 가운데 자기가 맞은 것 같았다. 죽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움도 몰려왔다. 잠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보냈다.

연말쯤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던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 뒤 떠오른 생각. ‘그래 이것도 내 운명이라면 받아들이자.’ 막상 죽음을 받아들이니 세상에 “미운 놈도 이쁜 놈도 없었다.” 지난해 말 평소 쓰던 사진기를 설치해 놓고 스스로 영정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치료는 해보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올해 초부터 병원을 다녔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않는다고 하자 항암 약물치료를 권했다. 1주일에 1번씩 항암치료를 받았다.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창자를 가위로 자르는 것 같아요. 1주일에 6일 동안 모르핀을 먹어야 했어요. 통증이 잦아질 때쯤이면 다음번 항암주사를 맞을 때가 돼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했다. 항암치료와 장기간의 모르핀 복용으로 장 무력증이 생겼다. 변비가 심해 통증 때문에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의사는 변비라면서 약만 주고 돌아가라고 했어요. 너무 아파서 동네 병원에 찾아갔더니 내과 과장님이 관장을 해주셔서 10분 뒤쯤 시멘트같이 딱딱한 변을 볼 수 있었어요. 살 것 같더라구요.”

음씨는 항암 약물치료를 그만두기로 했다. 가족들도 찬성했다. 자연에 맡겨 보자는 것이었다. 채식 위주 식단과 아내가 여러 가지 야채와 버섯 등을 달여 만든 ‘야채탕’을 계속 먹었다. 변비는 아내가 권한 다시마 가루를 먹었더니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가벼운 산책 위주의 운동도 계속했다. 친구의 권유로 교회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업을 하면서 얻은 스트레스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긴다. 그는 1997년 아이엠에프 위기로 직장마다 명예퇴직 바람이 불 때 22년간 다니던 은행을 그만뒀다.

“직장생활은 할 만큼 했고 남은 삶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퇴직 전 구상했던 카센터와 세차장은 점찍어 뒀던 곳의 땅값이 두 배로 뛰어 포기해야 했다. 그 뒤 주식투자로 3억원을 날렸고 부동산 투자에도 실패해 퇴직금 2억원과 그동안 모은 재산 상당 부분을 잃었다. 그 과정에서 아내 이씨와 다투기도 많이 했다.

음씨는 쾌활하고 붙임성이 있어 친구들은 많았지만 꼼꼼하지만 소심한 자신의 성격이 사업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려다 돈도 잃고 병도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난 일은 잊으려 한다고 했다. 생각을 줄이기 위해 몸을 많이 움직인다는 음씨.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암세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겁니다. 요즈음엔 사는 게 참 행복해요. 아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양평/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현미밥·무농약 채소 먹고 야채·버섯 달여 마시고…

항암 약물치료를 그만둔 뒤 음혜철씨가 병원에서 받는 치료는 거의 없다. 한달에 한번씩 정기검진을 하고 3개월에 한 차례 쓸개에 심은 관을 바꾸는 것이 전부다. 쓸개에 심은 관은 췌장이 부어 쓸개즙이 십이지장으로 가는 것을 막기 때문에 통로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의 섭생은 은퇴 뒤 전원생활을 하는 일반인들과 거의 비슷하다.

먹을거리=현미 잡곡밥과 채식을 주로 한다. 반찬은 농약을 거의 쓰지 않은 깨끗한 채소를 쓰고 기름기 있는 음식은 아예 먹지 않는다. 몸에 힘이 많이 빠지면 아주 가끔씩 영계나 계란을 자신이 가스통을 잘라 만든 ‘가정용 훈제기’에 넣고 참숯으로 익혀 기름을 다 뺀 뒤 먹는다. 특이한 음식은 큰딸이 권해서 지난해 9월 말부터 하루에 4차례 먹는 ‘야채탕’. 무, 무잎, 우엉, 표고버섯, 당근 등을 넣어서 6시간 이상 달여서 만든 것이다.

운동=매일 아침 아내 이씨와 함께 1시간~1시간30분 가량 마을 부근의 야트막한 산에 다녀온다. 시골 생활이라 밭일 등 몸을 움직일 일이 많은 것도 운동이 된다. 집안일은 쓸데없는 생각도 줄여준다고 한다.

마음=교회에 다니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자신이 겪는 모든 일에 깃든 하나님의 뜻을 보려고 하고, 삶과 죽음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권복기 기자

난치병과 장애를 이기고 꿋꿋이 살아가는 분들, ‘병과 친구되기’를 통해 다른 환자에게 희망을 줄 분들의 이야기를 찾습니다. ‘병과 친구되기’에 참여하고 싶은 분들은 bokkie@hani.co.kr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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