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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10.31 18:41 수정 : 2006.10.31 18:41

이운섭(오른쪽)씨가 26일 충주지역 정신건강센터를 찾아 김대환 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믿음-현실 괴리에 좌절감 두렵고 우울해 집에 칩거도
명상과 약이 치료 큰도움 “좋은 세상 만드는 일 해야죠”

■ 병과 친구하기 ■ 12년째 조울증 이운섭씨 /

이운섭(38)씨는 12년째 정동장애를 앓고 있다. 정동장애는 조울증이라고도 한다. 감정에 장애가 있어 기분이 너무 좋다거나 너무 우울한 것이 주된 증상이다.

지난 26일 충주지역 정신건강센터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온 그는 여느 시골 청년처럼 순한 모습이었다. 그는 요즘 쌀배달을 한다.

“뉴스에서 범죄 사건을 보도하면서 정신질환자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아나운서의 말을 들으면 뜨끔합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들은 대부분 착한 사람들입니다.” 이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정신장애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물론 주위의 눈길은 곱지 않다. 하지만 그를 아는 사람은 정신장애인도 신체장애인처럼 하나의 장애를 가진 사람일 뿐 흔히들 생각하듯 갑자기 폭력적으로 돌변하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아님을 안다.

이씨는 요즘도 약으로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3주에 한번씩 병원을 찾는다. “약을 잘 먹지 않으면 가끔씩 이상한 생각이 들어요. 내가 대통령이 되어 나라를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 같은 거 말입니다. 허허허.”

그는 자신이 정신장애를 앓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다. “무척 여렸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 믿음과 현실의 괴리에서 느낀 좌절감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씨는 초등학교 때 친구 3명과 가게에서 껌을 훔치다 붙잡혔다. 가게 주인이 학교에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려 다음날 교사에게 불려갔다.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한 친구를 빼고 그와 나머지 2명은 30분간 뺨을 맞았다고 한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이씨는 비평준화 지역인 충주의 명문 충주고에 진학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와 가난에 찌든 집이 싫어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지방 국립대 대신 서울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1987년이었다. 대학가는 반독재 투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그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모태신앙을 가진 그는 ‘순한 동아리’라고 생각해 가톨릭 학생회에 들어갔지만 “가장 ‘센’ 동아리였다”. 선배들에게 간디처럼 비폭력 저항을 하자고 얘기했다가 선배들로부터 심한 핀잔을 들었다. 이 또한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1988년 조성만씨가 명동 성당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죽으려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두려움과 공포가 몰려왔다. 자신이 맡기로 되어 있던 학생운동 조직 안의 모든 자리를 훌훌 털어버리고 군에 입대했다.

복학 뒤에는 학생운동을 했던 선배들이 명망가로 바뀌는 것을 보고 “학생운동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1992년 대학을 졸업한 뒤 조경회사에 다녔지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만둬야 했다. 다음해 말 그는 고향인 충주로 내려왔다.

“아무것도 하기 싫더라구요.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기만 하고 자꾸 우울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냥 집 안에만 처박혀 있었어요.”

자신이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옆집에 사는 한 아주머니의 권유로 정신과에 갔더니 정신장애를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정신병자는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잖아요. 부모님은 멀쩡해 보이는 아들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셨나봐요. 없는 살림이지만 부모님은 좋다는 약은 물론 굿을 하고 점집에도 다니셨어요.”

그래도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은 약이었다. 한약을 지어 먹고 상태가 좋아져서 한동안 약을 끊었지만 다시 증상이 나타나 약을 먹기 시작했다. 명상도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일에 관심이 너무 많아 조증 증세를 자주 보인다. 충주지역 정신건강센터 김대환 관장은 그를 만날 때마다 “일을 줄이라”고 충고한다. 김 관장은 “지난해 3개월 정도 명상센터에 다녀온 뒤 상태가 아주 좋았다”며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선거때 민주노동당 일을 하면서 다시 조증이 심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명상을 하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자기 존엄성을 찾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을 좀더 낫게 바꾸는 일도 중요하잖아요. 평생을 그런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으려 해도 잘 안돼요.” 자신 안의 또 다른 나를 보듬는 일은 여전히 이씨에게 삶의 과제로 남아 있다.

충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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