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으로 척추뼈 굽어지지 않아, 고2때 발병 고통 참으며 공부
3번 도전 끝 의사의 길로 “친절한 의사 되고 싶어요”
■ 병과 친구하기 ■ 강직성 척추염 앓는 김강호씨 /
“적절하게 관리하면 큰 불편 없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합니다.”
인하대 병원 응급진료센터에서 일하는 전공의 김강호(33)씨는 강직성 척추염에 걸린 사람들이 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병으로 진단받은 사람들은 쉽사리 절망감에 빠지고, 또 나을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이상한 의술’에 매달리다 제때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해 심각한 상태에 빠지는 환자도 있다는 것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로 주로 척추 관절에 염증이 생겨 척추뼈와 관절이 대나무처럼 하나로 녹아 붙어 척추 마디가 굽어지지 않게 되는 병이다.
김씨 자신도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다. 그는 고교 때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진단받았지만 의대에 진학했고, 더구나 응급의학을 전공하며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2004년 결혼한 뒤 지금은 두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아들을 오래 안아주지는 못하지만 아빠 구실은 잘한다”며 웃었다. 다른 환자들에게는 희망의 증거인 셈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젊은이에게서 많이 발병됩니다. 치료가 어려워서 절망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병을 제대로 알면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김씨의 병증은 고등학교 2학년 추석 무렵인 1991년 시작됐다. 허리가 불편했지만 며칠 전 체육시간에 물구나무를 서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틴 일이 있어 그 때문인 것으로 여겼다. 동네 병원에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증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어 갑자기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통증이 심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2차 진료기관에서도 병명을 몰랐다. 몸이 아파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김씨의 아버지는 매일 아침 승용차로 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수업을 마친 뒤에는 다시 데리고 와야 했다. 그렇게 1년이 넘는 세월을 고통을 참으며 학교를 졸업했다. 선두권을 달리던 그였지만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학교 성적도 떨어졌다. 강직성 척추염 진단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혼자 찾아간 서울대 병원에서 받았다. 서울대 병원은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활액막염으로 두 차례 수술을 받았던 곳이었다. 고3 때 공부와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는 웬만한 학생들이 부러워할 법한 서울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어릴 적 꿈이기도 했지만 몸이 아프고 나니 더욱 의사가 되고 싶었다. 병원을 다니면서 의사들의 무뚝뚝함을 느껴 자신은 친절한 의사가 되고 싶었다. 다음해 다른 대학에 합격했지만 그마저 포기하고 3번째 도전 끝에 인하대 의대에 합격했다. “의대에 합격하자 부모님은 친절한 의사가 되라고 하시더군요.” 김씨의 현재 상태는 척추융합이 많이 진행돼 몸이 조금 뻣뻣한 편이다. 척추는 굳으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는 호흡과 함께 하는 스트레칭을 매일 빼먹지 않는다. 수영도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라 자주 한다. 소염진통제 등 관리에 필요한 약도 꾸준히 먹고 있다. 혈중 염증 수치가 여전히 높지만 그는 머지않아 약도 조금씩 줄여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환자와 나누기 위해 그는 강직성 척추염 환우회(www.koas.org) 회장단으로 다른 환자를 돕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교생활을 할 때 교수님은 물론 동료 선후배들이 많은 도움과 격려를 해줬습니다. 특히 소아과 전문의이자 응급의학 전문의인 한승백 교수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환자에게 늘 친절하게 대하는 게 어려워요.” 인천/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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