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 이겨낸 이혜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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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친구하기
유방암 이겨낸 이혜란씨 이혜란(46)씨는 씩씩하다. 표정도 밝다. 유방암 수술을 받았던 환자로 보이지 않는다. 늘 밝은 표정이 그를 ‘건강인’으로 보게 한다. “툭 털어버리는 성격”은 그 자신이 한때 암에 걸렸다는 생각도 거의 놓고 지내도록 하는 듯하다. 이씨는 연극 배우다. 극단 현장 소속으로 〈일곱 조각 테트리스〉에서 대기업 식당에서 일하다 노조의 구조조정으로 쫓겨난 뒤 청소용역 업체에서 일하는 춘자라는 여성 역을 맡고 있다. 인천, 충주, 울산 등 전국을 누비며 많을 때는 일주일에 4일 공연을 하지만 그는 피곤한 기색이 별로 없다. 술도 곧잘 한다. “아직도 왜 유방암에 걸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유 수유도 했는데 말이에요.” 그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2002년 7월. 가슴에 멍울이 자꾸 만져지고 마사지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를 병원으로 이끈 건 친정어머니의 성화였다. 조직 검사를 하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친정 식구들과 충남 태안군 몽산포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빨리 올라오라는 말이었다. 처음에는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건강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밤새워 일해도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던 그였다. 도대체 왜? 다행히 상태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유방암 2기.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했다. 임파선으로 전이할 위험도 있으니 임파선도 절제해야 한다고 했다. “맹장 수술 정도로 생각해 귀찮은 일을 해치우는 심정으로” 8월에 수술을 받았다. 임파선을 잘라 내고 유방도 부분적으로 절제했다. 방사선 33회 항암주사 12회 “수술보다 항암치료가 큰 고통
선배가 건넨 책이 날 일으켰죠” 10년 쉬던 연극무대서 다시 열정 “치료 과정까지 알았다면 수술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수술보다 그 뒤에 받은 치료가 너무 힘들었어요.”
항암치료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1주일에 5번씩 33번 방사선 치료를 받았고 2주에 한번씩 모두 12번 항암주사를 맞았다. 백혈구 수치가 위험 수위인 1000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 번 더 맞으라고 하면 차라리 암이 재발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런 어려운 시기를 넘는 데는 친구와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한 선배가 절판됐다며 제본을 해서 건네준 〈사랑은 의사〉라는 책이 큰 도움이 됐다. “그 책을 읽고 병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그동안 몸을 돌보지 않고 의지만 앞세워 살았어요. 몸이 주는 메시지를 알아채지도 못했고요. 수술과 치료를 하면서 병과 친구처럼 지내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참 힘들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대학 때 마당극 동아리를 만들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졸업 뒤 여성평우회 문화부에서 일했고, 1987년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가 닻을 올리자 간사로 일했다. “쟁쟁하고 기도 센 노동자 선배들 사이에서 학생운동권 출신 이른바 학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일을 했어요.” 결혼 생활도 힘들었다. 노동운동하는 가난한 남자와 결혼해 서울 오류동의 달동네에서 6년째 단칸방 생활을 했다. 아이는 조금 나은 집에서 낳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이나 남편 모두 생활비조차 제대로 벌지 못하는 가난한 운동가였다. 밤에 과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선배들로부터 “그래 너는 학출이니까 돈이라도 버는구나”라는 말을 들을까 마음을 졸였다. “그때의 나에게 참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에너지를 재생시키지 않고 다 써버린 게 문제였어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무척 애를 썼습니다. 5남매의 맏이 역할도 스트레스였어요. 지금 돌아보니 나에게 정말 과도한 주문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요즈음 일을 많이 줄였다. 10년 만에 다시 무대에 배우로 섰지만 지금은 스케줄을 여유있게 잡으려 한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친구가 운영하는 곳에서 금강경 강좌를 들을 정도로 마음에도 빈 공간이 생겼다. “기름진 음식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 밖의 음식은 가리지 않는 편입니다. 산에서 햇빛을 받으며 걷고, 명상원에 다니고, 요가도 하고, 댄스테라피도 합니다. 무엇보다 여유있게 사는 게 참 좋은 것 같아요.”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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