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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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친구하기] 고혈압으로 쓰러졌던 이성우씨
일빛출판사 이성우 대표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기적적”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이 대표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3개월 만에 일상으로 돌아왔다. 흔히들 중풍으로 불리는 뇌졸중을 겪은 사람 가운데 후유증이 없는 경우는 드문데 그는 손가락 하나 마비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생활습관도 예전과 비슷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좋아하는 막걸리나 고량주도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핀다. 주량은 조금 줄였다. 그가 좋아하는 말인 〈논어〉의 ‘낙이불음’(而不淫:즐기기는 하되 빠지지 않는다)이 요즈음엔 삶 속에 녹아든 듯하다. 자만해 약 소홀히하다 ‘사고’3개월 입원치료 뒤 일상으로
맘 불편한 일 피하고 술 줄여 달라진 점도 있다. 매일 아침 그는 고혈압 약을 꼭 챙겨 먹는다. 약 먹기를 소홀히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2000년. 후배들과의 술자리에서였다. 양주를 한 모금 마셨는데 뒷목이 뻣뻣하고 몸이 불편해 화장실로 가 쭈그리고 앉아있다 바로 집으로 왔다. ‘주당’인 그로서는 드문 일이다. 2~3일 뒤 병원에 갔더니 혈압이 200까지 나왔다. “의사가 머리가 아프지 않더냐고 묻더군요. 작은 출판사 사장을 하다 보면 머리 아플 일이 늘 있습니다. 평소에 머리가 아파도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병원의 처방에 따라 혈압강하제를 먹기 시작했다. 증세는 곧 나아졌다. 건강에 자신이 있어서 약 먹는 일을 소홀히하게 됐다. 한달 반 가량 약을 끊었다. 그예 일이 터졌다. 2002년 3월 어느날 이 대표는 잠을 자다 일어나 화장실에서 구토를 했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잠이 깬 부인이 급히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다. “아내가 없었으면 큰일이 났을 겁니다. 그날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아마 무의식 중에도 살기 위해 화장실에 갔나 봐요.” 수술 뒤 중환자실 1개월을 포함해 3개월 동안 입원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병원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아무런 후유증이 없었다.” 그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좋은 기를 많이 받고 살아 멀쩡하게 살아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 자신 혈압이 높아진 원인을 잘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주위에서는 이 대표의 올곧은 성격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본다. 그는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나면 배가 아파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이었다. 소신도 뚜렷하다. 1990년 출판사를 세워 처음 낸 책 〈노동자의 철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감옥에 갔고, 94년 〈한국자본주의 분석〉으로 또 한 차례 기소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이라 생각되면 주저함이 없다. 그는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성격이다. 불의를 참지 못해 ‘욱’하는 경우도 많다. ‘을’인 출판사 사장으로 ‘갑’에 해당되는 필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리가 분명해서 좋다는 후배들도 있지만 작은 출판사 사장이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그런 성격이 불합리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분노에 불을 지펴 피를 끓였고 고혈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한 차례 삶의 고비를 넘긴 뒤 그의 성격도 조금은 바뀌었다. 선악에 대해서도 날선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추상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은 피하고 가급적 “좋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가족의 걱정 어린 눈길을 의식해 술도 자제하려고 한다. 지난 7월에는 4박5일 동안 전남 순천 송광사에서 열린 여름 수련회에도 참가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요즈음은 책도 거의 읽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자 〈상하이런 베이징런〉이나 〈현대 일본 문화의 토대〉처럼 시장의 반응이 괜찮은 책들도 낼 수 있게 됐다. “고혈압 환자 분들을 위해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절대 빼먹지 말고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서 시티(CT) 촬영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뇌혈관에 꽈리 같은 게 발견되면 제거하는 게 좋습니다. 요즈음은 간단한 수술로 가능하거든요.” 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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