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친구하기 -폐암 이겨낸 서양화가 김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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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과 친구하기] 폐암 이겨낸 서양화가 김한씨
6개월간 항암·방사선치료 62번 ‘석달 시한부’ 극복 4년째 생존
기적은 아내와 아들 기도 덕분 병간호 아내는 위암 고통받기도
항암 및 방사선 치료 62차례. 의사들도 깜짝 놀란다. 서양화가 김한(69)씨에게 기적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지인들이 모여 있는 인사동의 한 식당에 갔더니 모두들 깜짝 놀라더라고 했다. 폐암 말기라 석 달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지 3년 만에 멀쩡하게 살아서 나타났으니 말이다. “귀신이 나타난 줄로 알았다고 놀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김씨가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간 것은 2003년 9월2일. 하루종일 기침과 각혈이 끊이지 않고 살이 계속 빠졌다. 몸무게를 달아보니 54㎏. 키 180㎝에 몸무게 82~86㎏으로 건장한 체격을 자랑하던 그였다.
가족들의 성화에 못이겨 찾은 병원에서는 폐암 말기라고 진단을 했다. 기관지와 폐 사이에 천도복숭아 크기만한 암덩어리가 있었고, 왼쪽 림프샘(임파선)에도 전이되어 혹처럼 암세포가 자리잡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석 달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다.
의사가 자신의 가족이라면 항암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가족 회의 끝에 항암치료도 포기했다. 하지만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들려왔다. “의사인 조카가 조직검사를 해 보더니 비소세포암이 아니라 항암치료가 잘 듣는 소세포암이라며 걸어다닐 힘만 있으면 항암치료를 받으라고 하더군요.” 부인 권혜주씨의 말이다.
다시 검사를 해 보니 소세포암이 맞았다. 6개월 동안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각각 26차례 받았다. 폐암은 머리로 전이가 잘 된다고 해서 예방 차원에서 머리에도 방사선 치료를 10번 받았다.
권씨의 표현대로 “유치원과 초등학생 사이라고 할 정도로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가진” 김씨는 병원과 의사를 온전히 믿었다. “의사가 하자는 대로 다 했습니다. 병원과 의사를 믿었습니다. 하지만 꼭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그냥 담담하더군요.”
힘들었지만 치료 효과는 컸다. 암세포가 사라졌다. 물론 기침은 치료를 마친 뒤에도 계속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부인 권씨가 깨끗한 먹을거리를 위주로 식단을 챙기고 섭생에 신경을 쓰면서 밤낮없이 그를 괴롭히던 기침도 멎었다.
병의 원인? 그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많은 예술가가 그렇듯 김씨도 술과 담배를 즐겼다. 한산도나 청자 같은 싼 담배를 좋아한 그는 하루에 2갑씩 담배를 피웠다. 제자들은 그의 집을 찾을 때면 1년치 담배를 사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술은 담배보다 더했다. 더구나 부인 권씨가 원주의 대학에 출강하고 있어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에 얻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가 많아 밥 대신 술로 요기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주량을 묻기에 높게 잡았다고 생각하며 하루 6병이라고 답했습니다. 근데 남편이 하루 10병 이상 먹었다고 하더군요. 저도 놀랐어요.” 김씨는 작품 제작을 위해 10년 가까이 우레탄을 만졌던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여긴다. 일을 할 때면 늘 방독면을 쓰고 작업을 해야 했다. 치료 기간에 가장 고생한 것은 부인 권씨. 원주의 대학 교수인 그는 밤 10시, 야간수업을 마친 뒤에도 차를 몰고 경기도 광주로 왔다. 겨울에 눈이 오는 날은 집까지 오는 데 4~5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고생 탓인지 그 자신도 병이 났다. 허리 디스크가 먼저 찾아왔다. 하지만 수술을 포기했다. 자신이 입원하면 남편을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스테로이드제를 먹었다. “두 달 반을 약을 먹고 나니 위가 ‘빵꾸’가 났을 거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해보니 위암 3기라고 해요. 곧바로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뒤 일주일 만에 운동을 할 정도로 경과가 좋았다. “내가 쓰러지면 집안이 다 망한다는 긴장감에서 그렇게 초인적으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 김씨는 최근까지도 그의 속을 태웠다. 지난해 11월 중순. 낚시광인 김씨는 4박5일 동안 텐트에서 먹고 자면서 낚시를 한 뒤 갑자기 몸상태가 나빠져 음식도 삼키지 못한 채 식물인간처럼 바뀌어 갔다. 한동안 부인의 애를 태운 뒤 회복됐지만 아직도 병원에서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2005년 4월쯤에는 고교 동창들과 함께 남해안 여행을 떠난 김씨가 술에 떡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 인해 다시 기침이 시작되어 한동안 크게 고생을 했다. “미울 때도 많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이 남편을 살려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신앙이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둘째아들과 3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묵주기도를 바친 게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경기 광주/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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