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23 16:09
수정 : 2006.02.28 15:10
|
암 치료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명상과 심호흡,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이겨낸 이정순씨. 여러 시민사회단체 활동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요즘도 새벽이면 20분 정도 명상을 한다.
|
■ 대장암 극복한 이정순씨
“암과 치료에 따르는 고통을 심호흡과 명상으로 이겨냈어요. 주변 사람들의 위로와 격려는 투병 기간 삶의 가장 큰 희망이었습니다.”
이정순(58·대전시 가오동)씨는 2002년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그해 시민사회단체 활동 중에 알게 된 ‘민들레 의료생협’에 가입하면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전 시내 대학병원을 찾아 내시경을 비롯해 시티(CT)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니 대장에 암 덩어리가 있다는 것이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난소, 림프절, 혈관 등에까지 이미 전이된 상태였다. 진단 결과는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다. 죽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배가 아프거나 설사 등 암 증상이나 항암제 치료에 따른 고통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더 힘들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치료라고 생각했어요. 암을 앓았던 의사가 쓴 책을 비롯해 많은 수기를 읽었더니, 심호흡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고 해서 한 번 해 봤지요. 수술 뒤 방사선 및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매일 새벽에 20분 정도 심호흡과 명상을 했어요.”
특히 그는 대장을 비롯해 소화기관이 그려진 해부도를 바로 앞에 두고 명상을 했다. 마음으로 대장 등 소화기관에 따뜻한 마음을 보내고 그 기관들이 정상을 되찾는 상상을 했다. 이 과정을 통해 병이 빨리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이 덕분인지 대장의 일부와 주변 림프절을 제거하는 대수술도 잘 견뎌냈다. 또 치료 때마다 구토를 불러일으켰던 20여 차례의 항암치료와 28번의 방사선 치료도 잘 견뎌냈다.
주변 사람들도 병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을 줬다. 대장암 발견부터가 그랬다. 평소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알고 지내던 의사, 목사 등이 의료생협을 만든다며 도와 줄 것을 부탁받아 가입하면서 받은 건강검진으로 그나마 암 발견을 앞당길 수 있었다.
항암치료의 고통도 주변 사람들의 극진한 위로와 격려가 덜어줬다. 와이더블유시에이(YWCA),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여성운동단체인 여민회, 통일맞이 겨레 모임 등 함께 활동했던 단체의 회원들이 수술 뒤 움직이기 불편한 그를 찾아와 힘을 북돋워줬다.
“반찬이나 과일을 준비해 오는 사람이 줄을 이었고, 머리 손질을 해 주는 활동가들도 있었어요.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지내던 저에게 그들이 없었다면 암의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을 견딜 수 있었을까 싶어요.”
덜컥 닥친 암말기 선고 ‘죽음의 공포’ 가 더 힘들어
소화기관 해부도 앞에 두고 매일 건강회복 ‘상상훈련’
암을 앓은 뒤 이씨의 삶은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암 치료 과정 중에 가장 먼저 한 일이 600만원 정도를 들여 20년 가까이 살아온 13평 아파트의 환경을 바꾸는 일이었다. 가전제품을 새로 바꾸고 수납장, 미닫이 문 등을 환자가 힘들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가구를 손질했다.
“몸이 건강해야 시민 운동 등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제 자신을 위해 처음으로 큰 돈을 써 본 것 같아요. 그때부터 운동도 음식조절도 하기 시작했답니다.”
그가 챙기는 운동은 산책과 생활체조다. 아침이면 집 부근 천변을 걷고 구청 생활 체육 지도자의 시범에 맞춰 생활 체조를 한다. 운전 탓에 많이 걷지 못했던 과거와는 달리 하루에 만보 이상을 걷는다. 음식도 잘 가려 먹는다. 주로 현미, 잡곡, 검정콩, 율무, 보리 등을 섞은 잡곡밥이 주식이다. 잣이나 호두 등 견과류도 자주 먹는다. 고기류를 삼가는 탓에 이를 통해 식물성 기름을 섭취한다. 당근, 무청, 표고, 우엉, 브로컬리, 토마토 등 채소나 과일류도 많이 먹는다. 그는 지금도 음식을 조금만 잘못 먹으면 설사, 복통 등이 생겨 늘 조심한다.
암 투병의 힘든 과정을 거쳤지만 이씨는 요즘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루해가 짧다고 한다. 낮에는 본업인 세무사무소 일을 보고, 저녁이면 여민회, 민언협 등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한다. 새로 시작한 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후원회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남은 삶이 얼마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투병 중에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사회는 물론 그들에게도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많이 배웠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야지요.”
대전/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