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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30 18:49 수정 : 2006.02.28 15:10

엄나무회 회원들의 혈당 검사 기록표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는 조용길씨. 그는 20년 동안 운동과 식사요법으로만 혈당 조절에 성공하고 있다.

■ 당뇨 환자모임 ‘엄나무회’ 이끄는 조용길 씨

“회원들과 함께 운동하고, 혈당도 검사해 보고, 음식도 골라 먹으면서 당뇨 조절 함께 하면 더욱 힘이 납니다. 당뇨, 그거 제대로 알고 관리하면 약도 끊을 수 있습니다.”

서울백병원 당뇨 환자들의 모임인 ‘엄나무회’ 회장을 맡고 있는 조용길(80·서울 은평구 불광동)씨는 20년 전에 혈당이 너무 높아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당뇨 환자다. 당시 병원은 당뇨 합병증으로 폐렴이 생겼다고 진단했다. 혈당도 500이 넘게 나왔다. 폐렴 치료와 함께 인슐린을 투여 받아 혈당을 조절했다. 예순까지 살면서 병원 문턱 한 번 넘지 않았고, 젊었을 때는 씨름, 야구, 배구 같은 운동을 즐겼던 그는 앞으로 평생 당뇨 약을 써야 한다는 말에 삶의 희망을 잃기도 했다. 일단 혈당은 잡고 보자는 의사의 말대로 인슐린 치료를 받았다. 또 음식 조절이나 운동 등을 배우기 위해 병원의 당뇨 건강강좌 등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하지만 당뇨 교실에서의 의사의 설명은 그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환자들 가운데 나만큼 질문을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의사가 곤혹스러워 할 때까지 질문했거든요. 수업이 끝나면 다른 환자들이 나한테 와서 답을 물어보곤 했어요.”

당뇨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찾아 읽었다. 이 역시 그가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당뇨에 관한 지식이 널리 보급돼 있지 않았다. 진료 받을 때 의사의 설명은 3분을 넘기지 않았으며, 신문이나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본 의학책 독파하며 환자들과 지식나누는
‘불광동 당뇨 박사’…함께 모여 운동·식사조절

마침 일본에 다녀 올 일이 있었던 조씨는 그 곳에서 대만 의사가 쓴 당뇨 조절 생활 요법을 번역한 책과 일본 책을 만나게 됐다. 일본 종합상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 그 책들을 읽을 수 있었던 그는 그 내용을 번역해 함께 강좌를 듣던 다른 환자들과 지식을 나눴다. 그를 계기로 1987년 엄나무회가 탄생했다. 당뇨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함께 운동하고, 혈당을 높이지 않는 식단을 짜 밥도 같이 먹었다. 모임을 만들고 2년 뒤에는 백병원을 설득해 환우회 사무실도 구할 수 있었다. 이 때부터는 의사보다 당뇨에 대해 설명을 더 잘 해 주는 ‘당뇨 박사’로 통하기 시작했다.

다른 환자들과 함께 당뇨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씨는 운동과 식사 조절을 꾸준히 실천했다. 아침마다 식사 뒤에 불광동 근처 북한산 자락을 30~60분 걸었다. 저녁에도 식사 뒤에 동네 골목길을 30분 정도 걸었다. 엄나무회 사무실을 나갈 때도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면서 또 걸었다. 식사는 주로 야채류, 해조류 등을 챙겨 먹었다. 쌀도 도정을 덜 한 현미를 먹었고, 비빔밥이나 물냉면과 같이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음식을 주로 먹었다. 대신에 술, 담배는 멀리 했으며, 밀가루나 설탕처럼 사람 손이 많이 간 가공식품이나 정제식품은 피했다. 이런 운동과 식사 조절로 투여 받는 인슐린 양은 빠른 속도로 줄었다. 네 달 만에 48단위에서 4단위로 줄였다. 그 뒤 담당 의사의 권유대로 아예 인슐린을 끊었다. 지금은 아무 약도 먹지 않고 오직 운동과 식사 조절만으로 혈당을 120~140 정도로 조절하고 있다.

모임 이름도 사연이 있다. 엄나무가 혈당 조절에 좋다는 이야기를 옛날 서적들에서 조씨가 발견한 것이다.

“엄나무회로 정한 뒤 일본을 다시 찾을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기회가 돼 동경대 부속병원의 당뇨환자들과 관련 의사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엄나무 효력을 알고 있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씨는 “우리 모임이 그렇다고 엄나무를 잘 챙겨 먹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요즘도 엄나무회 회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건강강좌를 같이 듣고, 점심을 먹으며 정보를 나눈다. 식후에는 같이 골목길을 걷고 혈당 수치도 함께 검사하면서 서로의 몸상태를 알아보기도 한다. 또 자신들의 경험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해 여러 당뇨 환자들에게도 보내고 있다. 운동도 함께 챙겨 매주 토요일에는 가까운 산을 찾아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병의 성질을 잘 몰라 아직도 헤매는 당뇨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많은 당뇨인들에게 희망이 되리라 믿으며 남은 인생도 여기서 함께 할 생각입니다.”

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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