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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8 17:37 수정 : 2006.02.27 15:14

뇌성마비 장애인 신현성씨의 그림 그리기를 돕고 있는 허철웅씨. 본인도 정신질환을 겪고 있지만 그림 그릴 때와 장애인들을 도울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 정신분열병 허철웅씨

20대 초반 발병해 수차례 회사 그만두고 입원
장애인 그림그리기 도우며 병도 조절하고 희망도 찾아

“약 치료 때문에 몸에 힘이 없고, 종종 멍해지기도 하지만 그림 그리기와 다른 장애인들을 도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삶을 버티는 가장 큰 힘이지요.”

과거 시골의 한 구석,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시설에 환자들을 몰아넣었듯 사회에서 격리하고자 했던 질병들이 있다. 정신질환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문둥병이라 불리었던 한센병이나 에이즈도 마찬가지다. 이는 이런 질병에 대한 두려움 등 사회적 편견이 매우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견과는 달리 우리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봉사하며 살아가는 정신질환자도 많다. 허철웅(49·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씨가 바로 그 예이다. 그는 20대 초반에 ‘정신분열병’으로 진단돼 현재까지 이를 조절하는 치료를 받고 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지면서 모든 것이 기억나지 않는 등의 증상으로, 여러 차례 재발을 거쳤지만 최근 5년 동안은 한 번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마침 다른 장애인들의 삶과 그림 그리기를 도우며 함께 그림을 그리던 때부터 재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허씨는 정부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게 주는 돈으로 생활하면서 안양시 안양동에 있는 장애인 그림공간 ‘소울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매일 아침 9시 반쯤 이곳에 나와 다른 장애인들의 활동을 돕고 자신도 그림을 그리다가 저녁 7시에 집에 돌아가는 게 그의 일과다. 아침에 화실에 나오면 뇌성마비 때문에 손발을 움직이기 힘들어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신현성(21·남)씨를 돕는다. 그를 비롯해 지체장애인들 6~7명의 그림 준비 등도 함께 한다. 세수부터 씻기고, 식사도 준비하며, 그들의 식사도 돕는다. 식사 뒤에는 대소변 치우기 등을 비롯해 때때로 목욕도 시켜준다. 이 일을 벌써 5년째 해 오고 있다.

그림 그릴 때는 물감을 짜서 팔레트에 섞어 주기부터 붓을 물에 씻어 신씨의 입에 물려주는 것도 그의 일이다. 허씨는 신씨에게 하는 것처럼 이곳 장애인 그림공간에 함께 사는 장애인들의 손발이 돼 준다. 척수마비로 역시 지체장애를 겪고 있는 ‘소울음’ 원장인 최진섭(47·남)씨는 “허씨처럼 마음이 고운 사람을 보기 힘들 것”이라며 “여기 지체장애인들이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들의 꿈을 찾아가는 일에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허씨 역시 자신의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 그리기는 젊은 시절의 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나, 순수 화가가 되기엔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않았다. 그래도 붓을 놓지 않아 부산에서 머물던 시절 영화 간판 작업을 10년 정도 했다. 그 뒤에 손수 화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주로 동양화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유화도 그리지만 동양화가 싫증 나지 않아 가장 좋다. 지체장애인을 포함해 장애인들의 초청전시회인 ‘일어서는 사람들의 기록전’에도 3번 정도 참가했으며, 안양 장애인 수리복지관이나 서울아산병원·아주대의료원의 초대전에도 작품을 전시했다. 최 원장은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허씨는 다른 장애인들의 그리기에 도움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재능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허씨의 이런 봉사활동은 장애인들을 포함해 주위에 널리 알려져,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여한 ‘2005 정신건강대상 희망상’을 받기도 했다.

허씨는 최근 5년 동안 질병이 재발하지 않았다. 잘 견디다가도 가끔씩 재발해 다니던 회사나 화랑을 그만 두던 시절도 있었다. 일용직 등으로 일하면서 힘든 업무로 받은 스트레스가 크게 작용했다. 이 때문에 10여 차례 입원하기도 했다.

“지금 재발하지 않은 것은 내 일을 찾았기 때문이지 않나 싶어요. 장애인 등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고, 그림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과 그림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행복함을 가득 느낀답니다.” 이와 함께 꾸준한 걷기 운동과 세 끼 식사를 맛있게 하는 것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믿는다. 질병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요즘 작은 꿈 하나를 가지고 있다. “이제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해 보고 싶다”며 얼굴을 붉혔다.

안양/글·사진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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