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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1.03 19:15 수정 : 2006.02.27 15:08

■ 섬유성 골이형성증 앓는 김경애씨

“정신을 집중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행복할 따름이예요. 아직도 통증 때문에 자다가 잠깐 잠깐씩 깨기는 해도 과거에 비해 통증이 많이 완화됐기 때문이지요.”

섬유성 골이형성증과 화염성 모반 등 2가지 희귀질환을 동시에 앓고 있는 김경애(32)씨는 두 해 전에 자신이 스스로 번 돈으로 경기도 안산시에 원룸 전셋집을 마련한 뒤 무료 공공도서관에 다니면서 독학으로 보건직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왼팔과 왼다리 등 목 아래 왼쪽 절반이 피부의 혈관 이상으로 온통 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있는 화염성 모반을 갖고 태어난 그는 여고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섬유성 골이형성증까지 갖고 있는 줄 몰랐다.

여고를 졸업한 바로 그 해에 길을 걷다가 “정말 아무 이유도 없이” 대퇴부가 부러져 쓰러지면서 병원으로 실려간 뒤에야 골절의 원인이 섬유성 골이형성증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이유도 없이 뼈가 부러지는 병
집과 병원 외 삶은 없었지만
경험 살려 장애인단체서 일한 뒤
지금은 보건직 공무원 꿈꿔

화염성 모반 하나만으로도 “부끄럽고 창피해”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없고, 공중목욕탕에 가지도 못하는 등 한창 자라나는 꿈많은 소녀에겐 견디기 힘든 일이었는데, 섬유성 골이형성증이라니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뼈가 서서히 섬유질로 바뀌면서 흡사 수세미 처럼 약한 구조가 되어 병적인 골절을 일으키는 섬유성 골이형성증은 뼈가 잘 부러지는 것도 문제지만 부러진 뼈가 잘 붙지도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그는 처음 대퇴부가 부러졌을 때와 그 후 골반이 부러졌을 때에는 각각 1년씩 병상 신세를 진 뒤 제대로 걷기까지는 1~2년이 더 재활훈련을 하면서 보내야 했다. 1년씩 병상 생활을 할 때는 반년은 전신에 깁스를 한 채, 나머지 반년은 부분 깁스를 해야 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8년이 흐르는 동안 크고 작은 골절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입은 그는 병상과 집을 오가면서 사회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었지만 좌절할 수는 없었다.

“골절을 치료하기 위해 나사로 뼈를 고정하는 대수술을 몇 차례 받고 중환자실에서 지낼 때 위중한 환자들과 장애인들을 많이 보면서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다양한 중환자들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들의 애로사항이 무엇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자신만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곳을 수소문한 끝에 2000년에는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에서 일했고, 2001년부터 2003년까지 3년 간은 백혈병환우회에서 간사로 일했다.

생애 첫 풀타임 근무를 해본 두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더이상 골절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통증은 여전히 심해 갑자기 온몸의 힘이 빠지고 숨이 가빠지는 공황 발작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두 직장에서 맡은 업무는 회계, 환자 교육, 의료 상담 등이었는데 이런 업무를 수행하면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스스로 찾아 공부하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지요.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 2003년말께 백혈병환우회 간사직을 그만두고 지금은 자원봉사 활동만 하고 있지요”

섬유성 골이형성증으로 대학에 진학할 엄두도 못 냈고, 취업 기술을 배우기 위해 요리학원에 등록한 적도 있지만 수강 4일만에 골절이 생겨 포기해야 했고, 백화점에서 일하던 친구 대타로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가 하루만에 퇴짜를 받기도 했던 그에게 지난 2년은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4년 간 민간단체에서 일하면서 번 돈으로 1천만원짜리 전세 원룸을 마련해 부모로부터 난생 처음 독립해나와 생활하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는가 하면, 의료행정 관련 민간자격증도 취득하면서 보건직 공무원이 되어 난치병 환자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일하고픈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백혈병환우회에서 간사로 일할 때 공공보건을 위해 민간에서 할 일도 있고, 나라에서 해야만 될 일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는 보건직 공무원이 되고 싶은 이유를 분명히 밝혔지만 설사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한다고 해도 실망하지는 않겠다고 한다.

“만 32살로 나이제한이 있는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져 있지만 최선을 다하렵니다. 설사 떨어져도 시험공부를 통해 모르는 것을 많이 배웠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니까요”

안영진 기자 young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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