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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4 21:26 수정 : 2009.09.14 23:37

권태호 특파원

지난 토요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 시위대 6만여명이 모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안을 반대하는 사람들이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 집권 이후 최대 규모 반정부 시위’라고 했다.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는 손에는 성조기, 가슴에는 ‘애국자’ 스티커를 붙인 채 각양각색의 피켓을 들었다. “사회주의자, 러시아로 떠나라” 등의 피켓 문구는 양반이었다. 오바마 얼굴에 영화 <배트맨>의 악당 조커 분장을 한 사진, “우린 비무장으로 왔다 … 이번에는” 등 선을 넘은 듯한 문구도 여럿 보였다. 이날 시위는 ‘프리덤워크스’ 등 보수단체들이 지원했다. 참석자 상당수가 50~60대다.

이들이 오바마에게 반기를 드는 게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의보개혁이 실시되면, 앞으로 10년간 1조달러의 재정이 들어가야 해 세금 인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65살이 넘으면 받는 의료혜택인 ‘메디케어’가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 근원적으론 국가로부터의 ‘자유’를 찾아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선조들의 피가 흐르는 탓에 개인 삶의 정부 개입에 본능적으로 과민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데 미국 의보개혁 진통을 보며 ‘참, 한국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처음엔 논리 싸움을 벌이다 종국엔 보수·진보로 나뉘어 ‘무조건 반대’ 양상을 빚는 것도 똑같고, 지역적으로 보수·진보가 갈리는 것도 똑같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 ‘죽음의 위원회’(Death Panel) 같은 왜곡된 주장을 무턱대고 믿고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도 똑같고, 나이든 분들이 성조기 흔들며 광장에서 ‘애국’(patriot)을 외치는 것도 똑같고, 밑도 끝도 없는 ‘좌파’ 논쟁이 이는 것도 똑같고, 의보개혁을 반대하는 건지 오바마를 반대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도 참 똑같다.

의회에 상정된 개혁안을 보면, 개인은 소득에 따라 보험료 보조를 받는다. 저소득층뿐 아니라, 연방정부 책정 빈곤선인 ‘4인가족, 연 2만2000달러’의 3배인 연소득 6만6000달러 이하까지다. 지난해 미국의 가구당 중간소득이 5만303달러이니 50% 이상이 적든 많든 혜택을 받는다. 세금은? 가구당 소득 35만달러 이상이면 소득의 1%(3500달러)를 더 내야 하고, 단계별로 누진돼 100만달러 이상이면 5.4%를 더 내야 한다. 물론 오바마가 ‘안 그러겠다’고 하지만, 재정적자가 심해지면 중산층 세금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득 의문이 든다. 수만명 시위대 중 연소득 35만달러 이상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연소득 100만달러 이상인 사람도 나왔을까? 시위대 대부분은 월마트에서 보는 서민층들인데.

익히 보아왔다. 전체 가구의 1.6%, 시가 기준 9억원 이상 주택에만 해당하는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는지. 감면을 포함하면 실제론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연봉 2200만원 이하 사람들이 얼마나 세금 인상을 걱정했는지. 미국도 별반 차이가 없다.

사회주의와 세금을 반대하면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세금의 상당 부분을 축내는(?) ‘메디케어’에는 왜 반대하지 않는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노년층과 저소득층에 대한 무상의료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도입하려 했을 땐, ‘사회주의적’이라며 그렇게도 반대했던 공화당이 이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축소’를 왜 그리 걱정하게 됐는지. 앞뒤가 안 맞는 것도 똑같다.

다른 게 있다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거짓말쟁이’라고 외친 조 윌슨 의원에게 이틀 만에 100만달러의 후원금을 보냈다. 어쨌든.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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