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21 21:09
수정 : 2009.09.21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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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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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왕조들의 수도였던 시안과 그 주변엔 황릉들이 즐비하다.
당국이 도굴 단속을 강화하자 도굴꾼들은 농민들이 우연히 발견해 집에 두고 있는 골동품을 찾으러 나섰다. 어느 농가를 지나가다 개밥그릇이 귀한 골동품인 것을 알게 된 도굴꾼이 농부를 속여 비싸게 개를 사주는 척하면서 개밥그릇을 가져가려 했다. 그러자 농민은 “내가 이 개밥그릇을 가지고 개를 몇 마리 팔았는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 도굴꾼은 손해를 본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한때 시안에서 유행했다는 우스갯소리다. 어수룩해 보이는 농민이 약삭빠른 도굴꾼보다 한 수 위라는 뜻으로, 농민은 아직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는 중국을, 도굴꾼은 중국에 진출한 미국 등 외국 세력으로 읽힌다. 이 얘기를 들려준 중국 전문가는 “중국은 무서운 나라”라며, 우리가 겉으로만 중국을 판단할 뿐 중국의 실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건국 60돌을 맞이한 올해, 중국은 이제 농부의 낡은 옷마저 벗어던지고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바탕으로 강대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국은 오는 10월1일 건국 60돌 기념식에서 대규모 군병력을 동원해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한다. 이 자리에선 중국이 자체 개발한 최신형 무기들을 최초로 공개해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한다.
베이징의 한 중국 문제 전문가는 “덩샤오핑은 애초 중국이 2030년까지 도광양회(실력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를 통해 실력을 쌓은 뒤 미국과 본격적으로 경쟁에 나서는 계획을 마련했으나, 중국은 이 목표를 20년도 넘게 단축해 달성했다”며 “올해 중국 건국 60주년은 단순한 기념행사가 아닌 중국이 세계 무대에서 미국과 힘을 겨루게 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적 성과는 중국의 힘을 뒷받침하는 단단한 반석이다. 최근 금융위기 1주년을 맞은 중국 언론에서는 중국이 과감한 경기부양 정책을 통해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위기에서 탈출했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최근 미국이 중국산 타이어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것을 둘러싼 타이어분쟁에서 중국의 입장이 강경한 것도 ‘할 말은 하겠다’는 중국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의 강대국화는 먼저 중국 자신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미 경제·군사·국제적 영향력에서 ‘철혈의 힘’을 갖췄지만, 지난 30년 동안의 불균형 성장이 사회적 약자들에게 가한 가혹한 부작용에 대한 반성을 담은 새로운 경제·정치 모델을 찾을 수 있을까? 중국 역사가 전성기마다 보여준 관용의 정신을 되찾아 ‘부드러운 힘’으로 세계의 진정한 존경을 얻을 수 있을까? 적어도 중국 정부는 현재 이런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앞에 놓인 과제는 더욱 무겁다. 과거 냉전시대 50년의 공백기를 거쳐 겨우 지난 17년 동안 중국을 경험했을 뿐인 우리는 중국의 화려한 모습에 지나친 기대를 갖거나 중국의 일부 낙후된 모습을 보며 무시해 버리는 오해의 양극단을 오가는 경우가 많다. 중국을 깊이 오래 경험한 한국인들은 중국이 빠르게 강대국의 면모를 드러내며 전세계의 지각판을 움직여 가는 동안, 한국이 여전히 과거만 바라보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한국 정부가 한-미 동맹 ‘일변도’ 정책에 점점 더 집착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는 차가워지고 있는데도, 중국이 우리의 최대 시장이라는 눈앞의 현실에만 계속 안주할 수 있을까? 우리는 냉철하고 자주적인 시각으로 중국과 세계의 변화를 판단하고 대처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박민희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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