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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30 21:26 수정 : 2009.11.30 21:26

김도형 특파원

최근 일본에서는 거대한 정치실험 ‘극장’이 펼쳐졌다. 내년도 각 성청의 예산을 검증하는 작업이 민주당 정부의 행정쇄신위원회 주도로 9일간 진행됐다. 지난 28일 끝난 검증작업 결과 1조7000억엔의 예산 삭감 효과를 낳았다. 애초 민주당 정부가 목표로 했던 3조엔 삭감에는 못 미쳤지만, 적어도 정권교체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와 민주당의 최대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을 둘러싼 새로운 정치헌금 의혹이 최근 잇따라 보도됐지만 내각 지지율은 오히려 조금 올라갔다.

30일 발표된 <니혼게이자이신문>과 <교도통신> 여론조사 결과, 검증 작업을 높게 평가하는 의견이 각각 77%, 75%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 68%, 63.7%를 웃도는 수치다.

무엇보다 예산편성 과정이 투명해졌다는 데 많은 일본 국민이 박수를 보냈다. 각 성청과 족의원들이 밀실에서 예산편성을 주무르던 자민당 집권 시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각 성청의 관료들과 산하 기관장들이 예산낭비 실태를 지적하는 검증위원들의 날카로운 추궁에 쩔쩔매는 장면이 낱낱이 공개됐다.

도쿄 시내의 한 체육관에서 9일간 진행된 검증 과정은 3만여명의 시민이 직접 참관하고, 인터넷 현장 중계에 270만건의 접속 횟수를 기록했다. 상당수 일본 언론은 이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과 같은 ‘정치 쇼’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예산 삭감 쇼는 복지예산 마련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한 점이 다르다. 비정규직 양산과 소득 격차, 마구잡이 해고 등 고이즈미 정치의 부정적 유산을 극복하려는 민주당의 노력을 일본 국민은 일단 믿어주는 분위기이다.

<아사히신문> 판정단의 한 사람으로 현장을 줄곧 지켜본 32살 증권회사 직원은 “획기적”이라며 100점을 매겼다. 지난 25일 체육관을 찾은 데 이어 26일 이번 행사를 주도한 사회당 출신 센고쿠 요시토 행정쇄신상과 면담한 심상정 전 진보신당 대표는 이번 방일(23~29일) 중 느낀 점이 많은 듯했다.

그는 지난 27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과거 10년간 한국의 민주정부에서 국민 복지 측면은 좋아진 것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하고 “일본 민주당 정부의 복지정책을 보면서 세계는 진보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심 전 대표는 “민주당이 내세운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는 ‘건설에서 복지로’를 내건 진보신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며 “일본의 시도가 양극화 시정을 위해 진보정치의 전망을 세우는 데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지사 출마설이 나도는 그는 생활정치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며 한국 진보정치의 희망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생활정치가 단순히 구호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거대담론 대신, 좀더 지역밀착형 정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당 사례뿐 아니라 일본의 혁신정당의 ‘살아남기’도 참고가 될 듯하다.


일본공산당, 사민당의 경우 중앙정치의 세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여전히 든든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공산당은 8·30 중의원 총선에서 9석 획득에 그쳐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러나 지방의회에서는 3000명이 넘는 의석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4월 지바현에서 만난 공산당 초선 시의원의 활동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공산당 이념이나 당 강령 따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 환경친화형 마을버스의 지역구 운행, 해고된 비정규직의 생활보호 신청 등 지역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파고든다고 했다.

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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