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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7 21:38 수정 : 2009.12.07 21:38

권태호 특파원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시카고에 온 민영(가명)이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집안형편이 넉넉지 않았으나, 부모들은 민영이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기울였고, 민영이는 줄리아드음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민영이는 그때에야 알게 됐다. 부모님이 불법체류자이고, 민영이도 자동으로 불법체류자이고, 따라서 불법체류자는 대학 입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민영이와 부모는 시카고 지역 의원과 시민단체 등에 호소하는 등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10년 전 이야기다. 그 후 민영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시카고의 한 한인단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지금도 ‘제2, 제3의 민영이’는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은 가게 점원 등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거나 방황을 한다. 현재 미국의 전체 불법체류자 수는 1200만명에 이르고, 이 중 한인 은 23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여름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 시카고지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때 작은 사무실 한쪽에서 이민 1.5세, 2세 대학생들이 이민자에 대한 사회보장 혜택을 요구하는 서명편지 1만여통을 한인들로부터 받아 빌 클린턴 선거사무실로 보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당시 분위기는 마치 대학가 동아리방 같았다.

13년이 흐른 지난 1일 그곳을 다시 찾았다. ‘한인교육문화마당집’이라는 간판을 단 번듯한 사무실에는 직원만 10명이었다. 지금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중인 의료보험·이민법 개혁안 등에 한인들의 권익이 반영되도록 하는 데 애를 쓰고 있다.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도 합법 이민 문호 개방이라는 방식의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사무실 인근 ‘청소년교육센터’에 들렀을 때는 좀더 놀랐다. 13년 전에는 ‘시카고 한국학교’라는 간판 아래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글이나 우리 민요 등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베트남 모자인 ‘논’을 쓰고 벗으며 베트남 전통무용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도 한인뿐 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대만 등 여러 아시아계가 섞여 있었다. 지도간사 둘 중 한 명은 타이 사람이었다. 영문을 물었다. “처음에는 한인 청소년들의 한국 알기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으나, 아이들이 다른 아시아계나 라틴계 친구들을 데려오면서 다국적화됐다.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만 고집하지 않고 이민자 사회에서 다른 민족과 연대하는 법을 스스로 배워나가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제로 한인 권익운동은 한인들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다른 아시아계·중남미계와의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 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의원을 찾아가 의회에서 이민자 커뮤니티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투표’가 중요하다. 한인교육문화마당집 손식 사무국장은 “의원들은 한인들이 투표를 얼마나 했는가를 먼저 체크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인들은 이제 미국 외에도 한국의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손 국장의 말이다. “한인들이 고국과 네트워크를 맺어야 하지만, 그 방식이 투표권이라고 보진 않는다. 한인들의 권익은 한국 의회가 아닌 미국 의회에서 해결해야 한다. 한인들은 다른 아시아계·흑인·라티노 등 미국내 소수자와 연대해 정치적 목소리를 키워야지, 한국으로 퇴행하는 형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한인 사회가 고국 정치바람을 타고 분열될까봐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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